전화금융 사기의 ‘재구성’… 이런 수법 조심하세요

  • 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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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경찰 사칭… 눈뜨고도 당해

“결혼한 아들 축의금인데….”

박호선(가명·62·서울 광진구) 씨는 지난달 말 전화금융사기로 999만 원을 날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은행과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박 씨는 “수법이 워낙 교묘해 순식간에 당했다”고 땅을 쳤다.

금융회사 직원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전화금융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중국 폭력조직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전화금융사기가 2000건 이상 발생했다.

전화사기 건수는 올해 1월 628건에서 2월 294건으로 줄었다가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박 씨의 피해 사례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했다.

○ “믿지 않을 수 없었다”

3월 31일 토요일 오후 3시.

박 씨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제일은행인데 카드대금 400만 원이 3개월째 연체됐네요.”

박 씨가 “제일은행과 거래한 적이 없다”고 하자 상대방은 차분한 목소리로 “불법으로 계좌가 개설된 것 같으니 신고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20분쯤 지났을까.

‘경찰 금융범죄안전수사부’ 소속이라는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박 씨의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을 대면서 “본인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어 “누군가가 신분증을 도용해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은 것 같으니 수사하겠다”고 했다.

박 씨가 자신의 농협 계좌에서도 돈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불안해하자 남자는 “지급정지 신청을 하면 3억 원까지 보호된다. 토요일이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줬다.

○ 신고에만 20분 걸려

박 씨가 황급히 농협 ATM 앞에 도착하니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이때가 오후 4시.

카드를 넣어 계좌이체 버튼을 누른 뒤 신한은행을 선택하라고 했다. 또 예금 잔액을 기입한 뒤 이체 버튼을 3번 누르라고 했다.

박 씨가 주저하자 상대방은 “금융사고 관련 단일창구가 신한은행이며 버튼을 세 번 누르는 건 지급정지 기능 설정을 위한 단축키일 뿐 돈은 계좌에 남으니 염려말라”고 했다. 그럴듯했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자마자 자금이 이체됐다는 안내문이 떴다. 휴대전화는 이미 끊겼다.

‘속았다’고 직감한 박 씨는 농협으로 전화했다. 겨우 연결된 상담원은 “신한은행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결국 박 씨가 출금을 정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여 분. 이미 돈은 빠져나간 뒤였다.

경찰 측은 “중국 폭력조직 ‘삼합회’가 개입한 사기 같다”며 “돈을 찾는 건 불가능하니 포기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박 씨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발신자 번호에는 중국 국가번호인 ‘86’이 있었다. 당국은 중국에서 사기 전화를 한 직후 국내에 있는 ‘자금 인출팀’이 대포통장(계좌 개설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통장)으로 이체된 자금을 빼간 것으로 보고 있다.

○ ‘진화’하는 사기 행각

금감원과 경찰은 박 씨의 피해 사례가 종전의 전화사기와 다른 특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일반적인 전화사기에선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전화하기 때문에 억양이 특이한데 박 씨에게 전화한 사람들은 모두 서울 말씨였다.

사기범이 각종 개인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도 종전 사건과는 다르다. 중국 폭력조직이 한국 내 범죄조직을 통해 개인정보를 입수했거나 중국을 다녀간 사람의 출입국 신고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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