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명 중 39명이 판박이…교수도 깜짝 놀란 ‘리포트 표절’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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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학생의 표절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죄의식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표절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며 눈감아 주던 관행이 변화하고 있는 것.

부산대 행정학과 김행범 교수는 지난달 말 1학년 전공필수과목인 ‘행정학 원론1’ 강의에서 198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공공선택이론’ 요약 논문을 번역하라는 과제물을 냈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정치행정 현상을 분석한 논문으로 갓 입문한 행정학도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 결정한 주제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 김 교수는 제자들의 리포트를 채점하려다 고민에 부닥쳤다. 10여 명의 과제물이 학번과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이 똑같았다.

다른 리포트도 6명이 한 조를 이뤄 번역분량을 분담한 듯 순서만 다를 뿐 내용이 매한가지였다. 논문은 읽지도 않고 번역 프로그램에 의존한 과제물, 논문을 공유하는 인터넷사이트에서 번역문을 구입한 사례도 발견됐다. 김 교수가 4, 5시간 동안 읽은 리포트 40여 편이 이런 식이었다.

채점할 의미를 못 느낀 김 교수는 제자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수가 1차로 표절 여부를 걸러 낸 뒤 학과장과 동료 교수, 재학생이 참여한 2차 심사를 거쳐 39명의 리포트를 ‘표절’로 결론 내렸다.

행정학과는 12일 수강생 110여 명 가운데 39명의 명단을 학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학생들에게는 학과장과 자신 명의로 경고장을 보냈다. 경고는 학사경고 등과 달리 제재조치가 없고 계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김 교수는 경고장에서 “진리를 학습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배워야 할 대학의 연구 활동에서 표절과 조작 등이 자행되는 것은 대학 전체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교수사회가 바로 서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공분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또 “타인의 결과물을 도용, 절취, 공모, 표절하는 행위가 자행되고 대학이 ‘진리의 학습장’이 아니라 ‘거짓의 연습장’이 되고 있는 게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경고장을 읽은 학생들은 김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내 “잘못인 줄 몰랐다” “경고장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일부 베끼기는 표절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이번에 확실히 반성했다”며 사죄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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