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엄마’가 생겨요”

  • 입력 2007년 4월 14일 1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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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단체인 ‘나눔누리회’ 소속 회원들이 아이들의 아침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날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시 아이들 얼굴은 찍지 않기로 사전에 약속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단체인 ‘나눔누리회’ 소속 회원들이 아이들의 아침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날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시 아이들 얼굴은 찍지 않기로 사전에 약속했습니다.

결식 아동들에게 아침 식사 챙겨주는 천사 엄마들

“잘 먹겠습니다.” “우와~ 맛있겠다.” “난 주먹밥이랑 김밥이 젤 좋아요.”

13일 오전 8시, 서울 강서구 가양동 K초등학교의 한 교실. 20여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침’을 먹고 있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는 김밥과 바나나가 들려 있다. 사내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양 볼이 불룩하게 입에 김밥을 밀어 넣는다. 여자아이들은 점잔을 떨며 다소곳하게 먹는다. 아이들 얼굴이 하나같이 밝다.

어머니들이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음료수나 먹을 것을 챙겨준다. 그새 다 먹은 아이들이 “김밥 하나만 더 주세요.” 아우성이다. 먹성이 좋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숫자가 불어난다. 어머니들의 몸놀림도 더욱 분주해진다. 몇 사람은 쟁반에 먹을 것을 담고, 몇몇은 아이들이 천천히 잘 먹을 수 있도록 거든다.

“우리 지역의 아이들은 우리가 챙겨야죠.”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아침도 주나요?” “고가의 등록금을 내는 ‘사립학교’ 이야기겠죠?”

‘아침 주는 초등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이다. 물론 아침을 제공하는 학교는 고액의 등록금을 지불하는 사립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드물다. 더구나 소년소녀가장이나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침’을 마련해주는 학교는 전무하다. 아이들은 그냥 굶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딱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가양4단지’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은 1992년 ‘나눔누리회’라는 자원봉사단체를 조직했다. 초창기에는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에게 쌀, 김치 등 먹거리를 지원했다. 지금은 후원뿐 아니라 직접 나서서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있다.

모임의 회장인 김규철 씨는 “지난해 초 우리 지역에 있는 소년소녀가장이나 결손가정 아이들이 아침을 굶고 등교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점심·저녁은 학교와 복지관에서 먹을 수 있지만 전국 어디를 가도 아침을 챙겨주는 곳은 없다. 그래서 나눔누리회 소속 어머니들과 상의해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양해를 구한 뒤 작년 6월부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아침을 마련해주고 있다.

요일별 ‘먹거리’도 다양하다. 김밥, 샌드위치, 주먹밥, 시리얼, 과일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정성껏 준비한다.

김 회장은 “장차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이웃에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저도 어렵게 자랐습니다. 어릴 때 담임선생님께서 제게 사랑을 많이 쏟아주셨죠.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분의 큰 사랑이 제가 이웃을 돌볼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 됐습니다. 아이들도 지금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커나가길 바랍니다.”

나눔누리회는 각 가정에서 나오는 폐품을 팔아 모은 돈과 봄·가을 정기 개최하는 일일찻집과 주민축제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금, 교회나 자선단체의 기부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초기에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지금은 회원 수가 40여명으로 불어났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오전 9시, 수업종이 울린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사라진 교실은 딴 세상이다. 고요하다. 어머니들은 그 때부터 더 바쁘다. 설거지하랴 청소하랴…. 속된 말로 의자에 엉덩이 붙일 시간이 없다. 그러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이날 아이들 아침을 챙겨줬던 구선옥·남정숙·이금화 씨는 “아이들의 얼굴이 나날이 밝아지는 걸 볼 때면 정말 가슴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아침 당번은 소속 회원들이 조를 짜서 요일별로 담당한다.

“아이들이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걸 보면 제가 더 배불러요. 모쪼록 아이들이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자랐으면 해요.”(구선옥 씨)

“여력만 된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어요. 이달 28일에 문을 여는 일일찻집에서 많은 수익금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남정숙 씨)

“다른 사람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오히려 해맑은 아이들 얼굴을 보면 힘이 절로 나요.”(이금화 씨)

이들은 “소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답했다.

“매일 아침이면 ‘엄마’가 생겨요”

교실을 나와 운동장으로 나선다. 새벽녘 대지를 적시던 비는 그쳤다. 그러나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다. 교문을 나서는데 아이들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섞여 초등학교 4학년인 이민진 양(소녀가장)의 말이 메아리쳤다.

“매일 아침이면 제게 ‘엄마’가 생겨요. 그래서 넘 좋아요. 근데…,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집에 갔을 때에도 ‘엄마’가 있었으면….”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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