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LA올림픽 마라톤 보도도 일장기 지워

  • 입력 2007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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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는 꼼꼼하게 기록한 스크랩북을 남겨 다시 한번 투철한 기자정신을 보여줬다. 스크랩북 1권에 담긴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 6위에 입상한 김은배 선수에 대한 8월 9일자 기사(위). ‘올림픽 마라손 경과’라는 기사에 어떻게 뛰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스크랩이 너무 오래된 데다 보관상태도 좋지 않아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질 듯한 상태다(가운데). 1936년 8월 9일(현지 시간) 베를린마라톤이 열리는 날 본보 8면에 실린 손기정 남승룡 선수에 대한 예고 기사(아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는 꼼꼼하게 기록한 스크랩북을 남겨 다시 한번 투철한 기자정신을 보여줬다. 스크랩북 1권에 담긴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 6위에 입상한 김은배 선수에 대한 8월 9일자 기사(위). ‘올림픽 마라손 경과’라는 기사에 어떻게 뛰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스크랩이 너무 오래된 데다 보관상태도 좋지 않아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질 듯한 상태다(가운데). 1936년 8월 9일(현지 시간) 베를린마라톤이 열리는 날 본보 8면에 실린 손기정 남승룡 선수에 대한 예고 기사(아래).
■본보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이길용 기자의 스크랩북

“동아일보선 항다반사”수기대로 ‘민족정신 고취’ 항상 준비

‘世界制覇(세계제패)의 凱歌(개가), 人類最高(인류최고)의 勝利(승리), 永遠不滅(영원불멸)의 聖火(성화).’

1936년 8월 9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2시간 29분 19초의 당시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우승한 다음 날 동아일보 석간 1면 기사 제목들이다.

1936년 8월 25일자 본보 석간 2면에 실린 손기정 선수 시상식 사진의 일장기를 지운 이길용 기자는 당시 체육면 기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스크랩했다. 이 기자의 3남 이태영(66) 21세기스포츠포럼 대표가 지난해 8월 동아일보사에 기증한 스크랩북 2권은 당시 이 기자의 ‘투철한 체육기자 정신’을 보여 준다.

총 15권 중 대부분 분실 및 유실되고 남은 이 2권은 이 기자가 1932년과 1936년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 각 1권이다. 스크랩북은 가로 46cm, 세로 25cm 크기로 당시 많이 쓰던 일반 양지를 사용해 고서적을 제책하듯 만들었고 내용은 본보를 주로 했으나 다른 신문사 기사도 종종 포함됐다. 이 스크랩북은 오래된 데다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만지면 부스러져 그동안 보관 방법을 놓고 연구를 해 왔고 내용은 최근 공개됐다.

이 스크랩북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그리고 올림픽 준비과정 및 후속기사가 모두 담겨 있다.

2005년 발견된 이 기자의 수기에서 “일장기 말소는 당시 동아일보에서 항다반사(차 마시고 밥 먹듯 이뤄진 일)”라고 했듯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6위를 한 김은배 관련 후속 박스기사의 사진에서도 일장기는 지워져 있었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는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가 올림픽 예선 및 각종 대회에서 활약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 기자가 이렇게 마라톤 관련 기사를 철저하게 모아둔 것은 손기정이나 남승룡 선수가 우승할 경우 민족 정기를 깨우기 위해 또 다른 ‘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본보 체육 주임인 이 기자가 청전 이상범 화백, 사진반원, 편집부원 등 여러 직원과 함께 일장기를 지운 것은 이러한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던 것이다.

스크랩북에는 일장기를 지우기 전인 8월 22일 기사까지 정리돼 있었고 그 이후엔 없었다. 이 기자가 일장기 말소로 다음 날 종로경찰서에 붙들려가 기사를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자는 1921년 본보에 입사해 사회부 체육담당으로 일하다 잠시 다른 회사로 옮겼으며 1927년 본보로 복귀해 줄곧 체육부 기자로 일했다. 스크랩북이 당초 15권이었다는 것은 체육부 기자를 하면서 거의 모든 체육 기사를 정리해 뒀다는 얘기가 된다. 1899년생인 이 기자는 6·25전쟁 중 납북돼 아직까지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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