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8시 45분경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뒷길.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는 구청 차량에서 3명의 공익요원이 나와 불법 주차 차량 15대에 ‘견인 스티커’를 붙였다. 5분 정도 지나자 4대의 견인차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장해 이미 스티커가 발부된 차량들을 견인해 가기 시작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앞에선 공익요원들이 30m 거리에 10대 정도의 차량이 한 줄로 불법 주차돼 있는 데도 중간에 공간을 두고 주차한 3대의 ‘선택된 차’에만 스티커를 붙였다.
본보 취재팀이 불법 주·정차 차량이 많은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뒷길과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앞에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일주일간 현장 취재한 결과 단속 공무원의 주·정차 단속이 견인업체의 편의를 봐준다는 의심을 살 만한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견인업체 편의 봐주기=서울시청과 구청에 따르면 단속 공무원과 견인업체는 단속 시간과 장소 정보를 사전에 공유해선 안 된다. 단속 정보가 공유돼 단속 공무원과 견인차가 함께 다닐 경우 짧은 시간 불법 주·정차를 한 시민조차 과태료 외에 무조건 견인료(2.5t 미만 4만 원, 2.5t 이상 4만6000원)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매일 단속 공무원 차가 나타난 뒤 약 5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견인차가 현장에 나타났다. 아예 견인차가 단속차보다 5분 먼저 도착한 적도 있었다.
특히 현대백화점 뒷길에서 기자가 목격한 견인차량 운전사들의 대화는 구청과 견인업체 간 단속 시간이 공유되고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 운전사 한 명이 “형, 내일은 단속 몇 시래?” 하고 묻자 또 다른 견인차량 운전사가 “아직 몰라. 이따 알려줄게”라고 말했다.
▽형평성 잃은 단속=홍익대 앞처럼 여러 대의 불법 주차 차량 중 앞차와 뒤차, 중간에 공간이 있는 차 위주로 스티커가 발부되는 건 빈 공간을 활용해 견인차량이 쉽게 견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총 50∼60대의 불법 주차 차량 중 빈 공간이 있는 곳에 주차돼 있는 25대 정도에만 스티커가 발부됐다. 형평성이 생명인 단속 업무가 견인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
마포구청 관계자는 “특정 차량에만 스티커를 발부하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도로교통법과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견인업체가 불법 주·정차 차량이 과태료 스티커 발부를 받은 뒤 몇 분이 지나면 견인할 수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규정이 부족해 단속 업무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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