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小鹿島). 아기 사슴을 닮은 섬에는 슬픈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오랜 세월 육지 사람들은 그곳을 ‘천형(天刑)의 섬’이라고 했고 그들을 ‘나환자’라고 불렀다.
15일은 소록도 사람들이 단절된 세상과 소통하는 날이었다. 소록도와 도양읍을 잇는 거금도 연륙교(1160m)가 주민에게 개방됐다. 발주처인 전남도와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설을 앞두고 주민들을 초청했다.
오후 1시 점심식사를 서둘러 끝낸 주민들이 우체국 앞으로 모여들었다. 6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을 앞둔 연륙교를 걸어 본다는 기대감에 들뜬 표정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주민 70여 명이 모였다. 소록도에는 한센인 650여 명이 산다. 평균 연령이 75세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주민들을 태운 트럭이 꾸불꾸불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다리는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트럭에서 내린 주민들은 87m 높이의 주탑과 상판에 연결된 케이블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마름모 형태의 주탑은 육지와 섬사람이 두 손을 모아 하나가 된다는 것을 형상화했다.
주민들은 다리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고생했다”며 시공사 직원들의 손을 꼭 잡았다.
“저 너머가 제 고향인데 이제 걸어서 갈 수 있게 됐어요.”
고흥군 녹동읍 인근 도덕면이 고향인 장인심(69) 할머니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마을 산에 올라가 다리가 놓이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다”며 “다리가 편견과 차별을 없애 주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 이남철(58) 씨는 연륙교의 산증인이다. 2001년 6월 착공 때부터 지금까지 다리가 세워지는 모습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았다. ‘소록도 사진사’인 이 씨가 인터넷 카페에 올린 사진은 200장이 넘는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나병에 걸린 나를 이곳에 데려와 결국 섬에 혼자 남겨졌을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가정을 갖고 사진에 취미를 붙이면서 아름다운 섬을 사랑하게 됐고 섬이 육지가 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섬에서 녹동까지 다리 위를 걸어가려고 했던 주민들은 바닷바람이 워낙 강해 ‘도보 행진’을 포기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을로 돌아가려던 차에 녹동 쪽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소록도 주민들이 연륙교 건너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양읍번영회, 봉사단체 회원 20여 명이 승용차를 타고 연륙교를 건너왔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형안(58) 도양읍번영회장은 “다리가 정식 개통은 안 됐지만 오늘은 섬과 뭍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며 “마주 보고 살면서도 서로를 외면해 왔던 두 동네 사람들이 이제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록도 사람들과 도양읍 주민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사이였다. 소록도 주민에겐 밥을 팔지 않는 식당이 있었고 이발소도 가지 못했다. 화해의 악수를 먼저 내민 쪽은 도양읍 주민들이었다.
2005년 11월 소록도 주민을 초청해 1박 2일의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온 후 봉사단체에서 몸을 못 움직이는 환자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김치도 담가 주고 있다.
김명호(58)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육지와 섬을 이어 주는 다리가 거의 완공돼 한없이 기쁘지만 걱정도 있다”며 “낯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이 훼손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케이블을 교량 몸체가 지탱하는 자정식 모노 케이블 현수교인 거금도 연륙교는 교량 난간과 접속도로가 완공되는 10월 개통될 예정이다.
소록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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