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경희]‘학력 저하’ 뒷짐만 질건가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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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 중심의 여유(餘裕)교육으로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트 산업사회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국제경쟁력의 저하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일본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따라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위원장으로 하는 일본의 ‘교육재생회의’는 학교 수업시간을 10% 늘리는 등 학생의 학력을 높이자면서 교육 개혁에 나섰다.

선진국은 1960년대에 들어 지나친 지식 중심 교육으로 발생하는 탈학교, 탈교실과 같은 교육 병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의 인간화를 표방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비형식 교육으로, 미국은 열린 교육으로 학생의 인간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추구했다.

이런 인간 중심 교육이 학생의 학력 저하라는 문제를 야기하자 1980년대에 들어서 미국은 기초교육을 강조하면서 지식 중심의 정보사회에 부응하는 고급 사고력 교육을 통해, 영국은 내셔널 커리큘럼이라는 국가교육과정 제정을 통해 학력과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일본 역시 1970년대 후반에 열린 교육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학생의 개성을 육성하는 것을 지향한 교육 과정을 구상하는 등 교육 전반에 걸쳐 인간화를 추구했다. 1977년 학습지도요령 개정 이후 여유교육 과정을 추진하면서 교육 내용을 30% 정도 삭감하고 주 5일제 수업을 도입하는 등 수업 시간을 점차 줄였다.

일본의 여유교육은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학력 저하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국제학력조사 결과 과학이나 수학과 같은 교과에서 학생의 학력이 저하되고, 이들 교과에 관한 선호나 관심 등의 학습 의욕이 조사 대상국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할 정도로 낮아졌다.

일본 학생의 학력 저하 현상이 현실화되자 2004년 이후 문부과학성과 자문기구인 중앙교육심의회는 학력 향상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면서 ‘확실한 학력’을 육성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교사 중심의 습득형 학습과 아동 중심의 탐구형 학습을 대립적이거나 양자택일이 아니라 통합하는 방향으로 학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학생 중심의 여유교육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가 중심이 되고 학생의 활동과 지식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전환해 학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노력은 커리큘럼이나 그 운영 방안을 개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원 평가의 강화, 교원 면허의 갱신, 학교 간 경쟁의 강화처럼 교사의 자질과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는 중이다. 학력 저하가 기초 지식의 경시, 획일적 평등주의 지향에 기인하는 점은 사실이지만 학교와 교원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차이를 차별로 인식해 능력이나 학력으로 학생을 구별하는 것을 부당한 차별이라고 보는 획일적 평등주의로는 학력을 높일 수 없다. 한국의 공교육이 사교육에 비해 부실해지고 교원의 질과 사기가 떨어지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공교육의 부실로 연간 15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기러기 가족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교육도 수월성과 경쟁 요소를 강화하면서 교육 당국을 혁신하고 학교와 교원의 질을 높여 나갈 때 무한경쟁의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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