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공소장 변경 언론보도 보고 알았다”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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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의 항소심에서 공소장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공판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법원과 검찰은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의 항소심에서 공소장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공판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법원과 검찰은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서울고법 404호 법정의 진실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린 지난해 12월 7일 서울고법 404호 법정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조희대)가 결심공판의 공판조서에 판사와 검사의 문답 2, 3쪽 분량을 임의로 추가해 논란이 일자 법원과 검찰은 당시 공판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결심공판 전말=재판부는 항소심 결심공판 도중 “법정에서는 절차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조 부장판사가 변호인 측을 향해 “나중에 볼 때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필요한 절차를 거쳤던 경우와 그러지 않은 경우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이날 공판은 절차상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판 과정을 지켜본 법원 관계자도 “공판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공판은 검찰이 에버랜드 CB 저가발행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공모관계를 입증할 자료들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재판부는 “검찰에서는 추가로 제출하는 자료가 참고는 되겠지만 1996년 10월 또는 11월 당시의 사정만으로 어떤 범의를 가졌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인데, 검찰이 제출한 것은 그 이후 벌어진 자료 아닌가”라고 물었다.

검찰은 “관련 자료는 1996년 10∼12월에 있었던 것으로 CB 발행 등과 관련한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과 결의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고 답변했다.

검찰은 재판장이 이전 기일에 요구했던 ‘상법 교과서 등에 있는 실권주의 처리와 배임’ ‘CB 대량 실권의 경우 이사의 임무’ 등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관련 내용에 대한 검찰의 설명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이어 변호인에게 검사가 제시한 의견서 내용을 공소 사실에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하는지 2차례에 걸쳐 물었다.

변호인은 첫 질문에 대해 “굳이 공소장 변경을 거칠 필요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의 없는 것으로 정리해도 되나”라고 묻자 변호인이 동의한 것으로 공판조서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변호인이 두 번째 질문의 답변에 대해 놀라며 ‘예?’라고 답했는데, 조서에는 긍정의 뜻인 ‘예.’라고 적혀있다”고 전했다.

이어 검사의 구형과 피고인의 최종진술 기회가 부여되면서 공판이 마무리됐다.

▽공판내용과 다른 조서=공판조서에는 변호인의 석연찮은 답변 직후부터 검사의 구형이 있기 전까지 약 2, 3쪽 분량으로 재판부와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놓고 장시간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할 것인지 묻고, 검사가 동의한다.

이어 검사가 조금 전 읽었던 의견서를 한 차례 더 낭독한 뒤 재판부의 공소장변경 허가를 받는다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또 이 같은 공소장 변경에 동의하는지 변호인에게 또다시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공판 참석자들은 “이 같은 질문과 답변 자체가 없었으며, 재판부가 검사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판 끝 부분에 검사가 공소장 변경과 관련해 재판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이의제기를 하면서 발언권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판은 재판장이 하겠다”면서 검사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공판 이후 상황도 서로 다르게 증언=조 부장판사는 22일 “공판 이후 사무실 앞에서 담당 검사 2명과 공소사실 변경에 대해 얘기했다. 검사들도 동의하고 돌아갔다. 공소장이 변경되는 것을 몰랐다면 내 방에 왜 찾아왔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검사들은 공판 직후 재판장실을 찾아갔으나 면담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장실에서는 “면담 신청서를 작성하면 내일 면담하게 해 주겠다”고 말해 이 검사와 재판장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

재판장은 그 대신 “(법정에서의) 속기록에 나온 내용대로 하겠다”는 뜻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부장판사는 또 “공판 당일 의견서 4쪽 둘째 줄부터 6쪽까지를 공소사실에 새로 넣겠다고 말했고, 검사와 변호인 양측 모두 동의했다. 공소사실을 변경한 당일에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결심공판 후 40여 일이 흐른 최근에야 공소장 변경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동아일보가 공소장 변경 사실을 보도한 것을 보고 18일 재판부에 공판조서 열람을 신청해 공소장 변경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의 공판조서 열람기록 날짜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쉽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도 이날 “법원으로부터 공소장 변경에 대해 연락받은 적이 없다. 언론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공판조서에 재판부와 검사의 문답 일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공판기록은 사무관이 쓴다. 검찰이 가져와 읽은 준비서면을 일일이 그대로 다 치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도 석연치 않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공판조서를 사무관이 작성한다고 책임도 사무관이 져야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재판장 해명 수시로 달라져

16일 “재판부 직권으로 공소장 변경 결정”

22일 “공소사실 추가분 담당검사가 동의”

16일 삼성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조희대)는 18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미루고 재판을 다시 열기로 결정하면서 “직권으로 공소사실 일부를 추가하는 형식의 공소장 변경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즉각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적이 없다”며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어느 한쪽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또한 재판부가 직권으로 공소장 변경을 했다고 밝힌 것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형사소송법 298조에 따르면 공소장 변경은 검사의 신청에 의해 이뤄지고, 재판부가 필요를 느낄 때에도 검사에게 요구해서 검사가 신청하도록 절차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일자 조 부장판사는 17일에는 “지난해 12월 7일 결심공판 때 법정에서 구두로 변호인 측에 공소장 변경에 대해 의견을 물었고, 검찰과 변호인 모두 (공소장 변경을) 이해한 것으로 알았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이 보도된 18일 검찰은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적이 없다. 공소장 변경이 이뤄진 사실도 몰랐다”며 재판부와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조 부장판사는 22일 본보가 공판조서 허위 작성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해 12월 7일 결심공판 당시 양측(검찰과 변호인) 모두 동의했다”며 적법하게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16일의 ‘재판부 직권 공소장 변경’ 발언에 대해선 “검찰이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낸 건 아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양측 동의를 얻어 추가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직권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2일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법원으로부터 공소장 변경에 대해 연락받은 적 없다. 언론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 부장판사가 ‘변호인(피고인)의 동의’를 언급한 것에 대해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인(변호인)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피고인의 동의를 통한 공소장 변경에도 검사의 공소장 변경 신청이 전제된다”고 덧붙였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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