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영장 잇단 기각에 ‘대법 입김’ 의심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코멘트
검찰이 19일 ‘대법원 재판예규’를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선 것은 각종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반복되고 있는 법원과의 갈등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선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에 대법원의 ‘입김’과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인식도 깔려 있다.

법무부가 18일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구속 요건을 구체화하기로 한 데 이어 검찰이 ‘대법원 재판 예규’까지 비판하고 나서면서 법원-검찰 간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속 확대? 신뢰회복?=법원은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검찰이 시민단체 회원 등 6명에게 재청구한 구속영장을 또다시 모두 기각하면서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70조 1항(구속 사유)에 명시된 구속 요건 3가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판단을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형사소송법의 추상적인 구속 요건을 더욱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의 구속 사유에 ‘사형이나 무기징역, 징역 10년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때’ ‘재범이거나 재범 우려가 있을 때’ ‘보복 범죄를 저질렀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 등을 신설해 구속 기준을 더욱 객관화하겠다는 취지다.

김 장관은 “형사소송법의 구속 요건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판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영장 청구와 발부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법 규정으로 인해 구속 영장 청구와 발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 장관이 특별수사통 검사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법무부는 관계 부처 협의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2월 임시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하거나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돼 국회에 계류 중인 법 개정안에 정부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 등 11명이 2월 제출한 형소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고 법무부가 검토 중인 안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법원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무부의 생각대로 형소법을 개정하면 인신 구속이 쉬워져 구속이 확대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또 법원의 판사들은 “지금도 보복범죄 우려 등을 고려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법 개정에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검찰 내에선 구속 영장 청구 요건이 구체화되고 강화되면 오히려 수사에 제약이 더 많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권도 찬반 논란이 팽팽해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법원 예규가 사법권 독립 침해”=검찰은 19일 오후 ‘불법집회 사범 영장 재기각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한미 FTA 협상 반대 집회 참가자 6명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재기각 결정을 정면 반박했다.

검찰은 “증거 인멸 우려가 높고 피의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소명이 충분함에도 이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법원이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은 ‘소명’이라는 법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대법원 재판 예규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자료를 추가 배포했다.

검찰은 대법원 예규 가운데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보고’를 통해 개별 법관의 영장 발부나 재판 등이 사실상 대법원(법원행정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주요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청구한 각종 영장을 법원이 잇달아 기각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이 예규의 폐지나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원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나선 것.

대법원은 검찰의 주장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행정처가 중요 사건을 파악해 통계를 내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법원행정처에서 수사 기밀이 누설된 적도 없고 그럴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이) 상식을 갖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