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안동‘장판각’을 아시나요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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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전국을 무대로 각종 문화재를 훔쳐 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장물 중에는 예부운략(禮部韻略·보물 917호) 목판(木板)도 포함돼 있었다.

예부운략은 시나 운문을 지을 때 운율을 찾기 위한 사전으로 조선시대 과거 응시자들의 필독서였다.

2002년 도난 당시 이 목판은 밀양 박씨 선암문중의 선암서원(경북 청도군)에 있었다. 지금 이 목판은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 장판각(藏板閣) 안으로 옮겨져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선암서원을 관리하는 후손 박영상(71) 씨는 “문중 회의를 거쳐 국학진흥원에 맡겼다”며 “귀한 문화재인데 한 번 도둑을 맞고 나니 불안해서 서원에 두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부근에 있는 국학진흥원의 장판각.

목판 보존을 위해 지난해 3월 건립된 이곳은 누군가 들어오면 불이 켜지면서 건물 안팎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습기나 좀을 막기 위해 내부 시설은 모두 오동나무로 꾸몄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가 쇠로 만든 창문을 조절한다.

10대의 고감도 화재감지기는 미세한 연기까지 잡아낸다. 불이 날 경우 물 대신 가스를 뿜어 산소를 없애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진화한다.

장판각 내 목판은 전국의 250여 문중이 맡긴 것으로 최근 5만 장을 넘어섰다.

한산 이씨, 안동 권씨, 재령 이씨, 진주 정씨, 인동 장씨, 진성 이씨, 진주 강씨, 평강 채씨, 경주 손씨, 의성 김씨, 청주 정씨, 밀양 박씨, 파평 윤씨, 경주 최씨 등의 문중에서 수백 년 동안 보관돼 온 목판들이다.

문화재 지정 신청을 안 했을 뿐 보물급 목판도 적지 않다.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선생의 문집과 징비록(국보 132호)의 목판 2000여 장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임진왜란 이후 서애 선생의 종가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과 병산서원에 있던 것이다.

도산서원에 보관돼 있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의 문집 등은 가장 먼저 이곳으로 옮겨졌다.

하회마을에 사는 서애 선생의 14대 종손인 류영하(80) 씨는 “수십 년 전부터 한두 장씩 사라져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며 “이제 보관 걱정을 덜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문중이 보유한 목판 중 상당수는 농기계 창고에 쌓여 있거나 다락방 등에 그냥 놓여 있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학진흥원 김종석(철학박사) 자료관리실장은 “목판은 조선시대의 대중적인 인쇄 방식이어서 선조의 생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며 “10만 장을 모으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판과 함께 문중에 내려오는 문집과 문서 등 15만 점도 이곳의 첨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장판각 2개 건물 가운데 한 곳은 앞으로 옮겨질 목판에 대비해 비어 있는 상태다.

문중이나 개인이 목판의 위탁관리를 요청하면 국학진흥원 측이 맡긴 목록과 계약서를 작성해 준다. 054-851-0700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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