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깊이보기]과학 시간에 철학하기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2시 56분


코멘트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통하는 ‘품질보증서’일까? 과학과 과학 아님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철학자 포퍼는 ‘과학적’임을 가리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내세운다. 반증가능성이란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음을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통하는 ‘품질보증서’일까? 과학과 과학 아님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철학자 포퍼는 ‘과학적’임을 가리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내세운다. 반증가능성이란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음을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통하는 ‘품질보증서’다. ‘과학적’이라는 표현은 합리적이고 믿음직하며, 심지어 정의롭다는 인상까지 준다. 그래서인지 우리 생활에는 ‘과학적’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등장하곤 한다. ‘과학적 성적 관리 프로그램’, ‘과학적 분석을 통한 배우자 찾기’ 등.

그런데 ‘과학적(scientific)’이란 무슨 뜻인가? 약방의 감초 격으로 너도나도 이 낱말을 갖다 붙여 쓰는 까닭에, 때로는 어떤 주장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놓고 큰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수맥(水脈)에서 생기는 파장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단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수맥파(水脈波)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수맥파가 몸에 나쁜지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풍수지리도 마찬가지다. 집터를 고를 때, 풍수지리의 배산임수(背山臨水) 원리만큼 적절한 ‘생활의 지혜’도 드물다. 그러나 풍수지리는 과연 ‘과학’일까? 풍수지리 이론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음양오행(陰陽五行)도 ‘과학적’인 설명 틀로 보아야 할까? 지구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보는 가이아(gaia) 이론에서 대체의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끝이 없다. 그렇다면 과학과 과학 아님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철학자들은 나름의 기준을 내놓는다. 포퍼는 ‘과학적’임을 가리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Infallibility)’을 내세운다. 반증가능성이란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점성술자의 미래 예언은 아무리 맞을 확률이 높다 해도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에 통계학자들의 예측은 틀릴 때가 아무리 많아도 ‘과학적’ 탐구로 대접받는다.

왜 그럴까? 점성술자들은 자기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설명한다 해도, 이를 통해 자신들의 예언이 맞을 확률을 더 높이지 못한다. 그러나 통계학자들은 자기 이론이 틀렸음을 통해 이후의 예측 확률을 끌어올린다. 예전에는 크게 빗나가곤 하던 선거 출구조사가, 최근에는 상당히 작은 오차로 들어맞곤 하는 사례들을 보라. 끊임없이 오류를 지적하고 고쳐나간 결과다. 이와 달리 점성술에서 예측이 들어맞을 확률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과학은 오류와 실수를 통해 더욱 정교해지고 완벽해진다.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과학의 이러한 속성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나아가 퍼스는 ‘과학적’ 탐구를 하는 이들의 특징으로 ‘겸손함(humility)’을 꼽는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상대의 반론이 아무 문제가 없으며 더 논리적인 데다가 효율적이기까지 하다면, 과학자들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곤 한다.

심지어 퍼스는 진정한 과학자라면 자기의 이론 전체를 통째로 ‘별것 아니라며’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짧은 삶을 살다 가는 인간이 영원하고 무한한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은 늘 적고 부족하다. 아무리 철저하게 이론과 해결책을 내놓는다 해도, 늘 비어있고 어긋나는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참된 과학자라면 자기주장이 결코 완벽할 수 없음을 알고 자기 입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정 참되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탐구할 수 있다.

‘과학적’이라는 말이 오류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밝혀진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과학자 최고의 의무이자 덕목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연구비나 주변의 지원과 배려를 계속 얻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 탓이다. 진정한 과학자는 최고의 성과가 아니라, 반증가능성을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 속에서 태어난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속임수가 있었다면 가차 없이 응징하는 과학계의 분위기가 왜 정당한지 생각해 보자.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