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통합 교과형 논술 정체 밝히기(4)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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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것이고,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은 그중에서도 창의력 평가에 주안점을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고능력을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평가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통합교과형 논술은 과거의 결과 중심 평가를 벗어나 앞서 특징 중 하나로 들었던 과정 중심 평가를 선호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연 어떤 방식인지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사고과정 입체평가로 시험 변별력 살려냈다

이미 대입 논술에서는 수시를 중심으로 과정 중심 평가 개념이 일부 도입되어 있습니다. 결과 중심 평가는 어떤 문제 해결 과정을 거쳤는지에 상관없이 마지막에 도달한 결과를 한편의 완결된 글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논술 문제가 지금까지 채택한 방식입니다. 보통 ‘통글 쓰기’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평가해 보니 비슷한 답안도 많이 나오고, 과연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지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단기간에 비슷한 자료를 토대로 배경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상투적인 구성방식에 대입해서 글을 만들어 내다보니 자연히 비슷한 답안이 양산됩니다(앞에서 이런 논술을 ‘크레이지 논술’이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어떤 답안을 보았을 때, 학생이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키운 능력을 발휘하여 나름의 사고 과정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이런 단기적인 방식으로 급조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가리기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결과 중심 평가는 사고 과정 전체를 촘촘히 평가하기는 힘들고 산출한 결과만을 평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제자나 채점자의 최고 목표는 3년 내내 실제 능력을 길러 온 학생과 급조해서 흉내만 내는 학생을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정확하게 가려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과정 중심 평가입니다. 과정 중심 평가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사고 과정을 분절화하여 하나하나 단계별로 평가합니다. 달리 말해 중간 사고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들을 차례차례 배치하여 결과만이 아닌 중간 과정까지 점검함으로써 결과에 이르는 실제 사고과정을 다면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서로 대립되는 제시문 (가)와 (나)를 주고, 다음으로 도표와 사례를 하나씩 줍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문항이 구성해 봅니다.

1. 제시문 (가)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요약하시오.

2.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나)를 비판하고, (나)의 관점에서 (가)를 비판해 보시오.

3. 두 제시문에 나타난 관점 중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여, 그 입장에서 주어진 ‘도표’와 ‘사례’를 설명해 보시오.

4.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도표’에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시오.

이렇게 한 세트로 이루어진 네 문항은 각각 어떤 능력을 평가할까요? 1은 읽기 능력을 평가합니다. 두 제시문 내용을 비교·대조해서 이해한 내용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지요. 2는 비판적 평가 능력을 측정합니다. 3에서는 도표를 이해하는 능력은 기본이고 제시문 내용을 응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4는 깊이 있고 다각적으로 접근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이렇게 출제하면 과거의 결과 중심 평가에 비해 세 가지 장점을 갖게 됩니다.

첫째, 문제 해결 과정을 단계적으로 나누어 여러 개의 문항에 차례대로 답하게 함으로써 배경지식을 암기하거나 글을 구성하는 요령을 익히는 방식으로 단기간 학습해서는 절대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실제 글을 읽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3년 동안 꾸준히 쌓은 다양한 사고 능력을 발휘해야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문항을 세분화하여 요구하는 바를 분명하게 제시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문항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함으로써 평가의 객관성을 더 높일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문항별로 채점하여 합계를 내기 때문에 답안 하나를 채점할 때보다 훨씬 더 변별력이 살아납니다.

이러한 과정 중심 평가는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지만 그중 특히 중요한 한 가지는 비판적 독해 능력의 비중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렇게 복수로 이루어진 문항 세트를 줄 경우 첫 한두 문제는 제시문의 내용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문제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의 예에서도 1이 바로 읽기 문제이지요. 이 경우 배점에서 문제 1이 4분의 1의 비중을 가진다 하더라도 실질 비중은 훨씬 높아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1에 대해 잘못 파악하면 2와 3의 답안도 방향이 다 어긋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독해 능력의 비중이 실질적으로는 증가하며, 이에 따라 읽기 능력을 기르는 데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과정 중심 평가의 논술 문제에 자주 출제되는 문항들은 교과서의 주관식 문제와 흡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예에 나온 문항들도 국어, 사회, 도덕 교과서에 있는 주관식 문항들과 유사한 것입니다.

결국 지난번과 결론은 같아집니다. 교과서의 주관식 문제 중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답을 한두 문단 정도로 작성하는 훈련을 각 과목에서 지속적으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합교과형 논술이 요구하는 다양한 사고 능력들을 배양하면서 논술 실력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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