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2007 정시 논술 특집]한양대학교 논술문제 유형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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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논술이다. 대입 정시모집에서 논술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성적과 함께 3대 전형요소 중 하나다. 수능과 내신성적이 이미 결정된 시점에서 수험생들은 논술 실력 향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시모집 논술은 대학별로 유형이 조금씩 다르다. 지원하려는 대학의 논술 유형을 파악해 맞춤식 연습을 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학별 유형에 맞춘 연습문제를 싣는다.》

제시문 (가)의 태도를 나머지 제시문을 근거로 비판하고, 그림을 활용하여 ‘정보화 시대에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주제로 논술하시오.

(가) 사이버스페이스는 너희들(산업세계의 정권들)의 관할권 밖에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마치 공공 건설 사업쯤으로 생각하여 너희들이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은 만들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 … 우리의 세계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곳에도 없지만, 우리의 육체가 거주하는 곳은 아니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중략) 비록 우리가 우리의 육체에 대한 너희들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이제 너희들의 지배에 견딜 수 있는 우리의 가상 주체를 선언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구 전체로 퍼뜨려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들이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발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

(나) 다른 기계들과는 달리 컴퓨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지시할 뿐이다. 노버트 위너에 따르면 컴퓨터는 ‘명령과 통제의 기술’이기에, 통제할 대상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컴퓨터가 관료주의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히 관료들은 결정이 그들의 통제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기술을 받아들이려 한다. 컴퓨터가 지닌 허울 좋은 지능과 공정성 때문에, 컴퓨터는 관료주의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주의를 돌려 컴퓨터 자신으로 향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마치 컴퓨터가 진정한 권위의 원천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컴퓨터로 무장한 관료는 우리 시대의 은밀한 입법자인 동시에 견디기 어려운 끔찍한 짐이기도 하다.

뒤늦게 학교에서 ‘행정’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컴퓨터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이나 ‘컴퓨터가 내린 결론은’으로 시작되는 말을 너무도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데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테크노폴리에서 이 말은 ‘그것은 신의 뜻이다’에 해당하는 거의 동일한 위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런 말로 사기를 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벽에 부닥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들의 무방비 상태는 카프카와 닮은 면이 있다. 그의 작품 ‘심판’에서 주인공 K는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지었다고 고발당한다. 컴퓨터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K로 만든다. 컴퓨터는 비인격적인 고발자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컴퓨터가 우리의 죄를 판단하는 근거를 전혀 알려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없다. 컴퓨터가 선언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편익을 위해, 어떤 가정에 기초해서 그 정보를 입력했는가를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닐 포스트먼, ‘테크노폴리’]

(다) 우리나라에 서화담 선생이란 이가 있었지요. 밖에 나갔다가 길에서 울고 있는 자를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느냐?”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저는 세 살에 눈이 멀어 지금에 사십년이올시다. 예전에 길을 갈 때는 발에다 보는 것을 붙이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에다 보는 것을 붙이고, 소리를 듣고서 누구인지를 분간할 때는 귀에다 보는 것을 붙이고, 냄새를 맡고서 무슨 물건인가를 살필 때는 코에다 보는 것을 붙였습지요.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으되, 저에게는 손과 발과 코와 귀가 눈 아님이 없었습니다. 또한 어찌 다만 손과 발, 코와 귀뿐이겠습니까? 날이 이르고 늦은 것은 낮에 피곤함을 가지고 보았고, 물건의 모습과 빛깔은 밤에 꿈으로 보았지요. 장애 될 것이 없어 일찍이 의심스럽거나 어지럽지 않았습지요. 이제 길을 가는 도중에 두 눈이 갑자기 맑아지고 백태가 끼었던 눈이 저절로 열리고 보니, 천지는 드넓고 산천은 뒤섞이어 만물이 눈을 가리고 온갖 의심이 마음을 막아서 손과 발, 코와 귀가 뒤죽박죽이 되어 착각을 일으켜 온통 예전의 일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아득히 집을 잃어 스스로 돌아갈 길이 없는지라,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였다. “네가 네 지팡이에게 물어본다면 지팡이가 응당 절로 알리라.” 말하기를, “제 눈이 이미 밝아졌으니 지팡이를 어디에다 쓴답니까?” 선생이 말하였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바로 거기에 네 집이 있으리라.” 이로 말미암아 논한다면 눈이 그 밝음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그려.

[박지원,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

김법성 청솔·일이관지 논술연구모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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