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아동지원법 1년…“제 자식 잃었어도 이렇게 무심할지”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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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찾을 겁니다” 6년째 잃어버린 딸 준원(당시 5세) 양을 찾고 있는 최용진 씨가 준원이의 생김새와 인적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위쪽은 준원이를 찾기 위해 최 씨가 만든 전단. 홍진환 기자
“반드시 찾을 겁니다”
6년째 잃어버린 딸 준원(당시 5세) 양을 찾고 있는 최용진 씨가 준원이의 생김새와 인적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위쪽은 준원이를 찾기 위해 최 씨가 만든 전단. 홍진환 기자
《1일은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이 시행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 이 법은 2000년 딸 준원(당시 5세) 양을 잃어버린 최용진(45) 씨를 비롯해 몇몇 실종아동 부모가 4년간 국회의원들을 쫓아다니며 호소한 끝에 만들어졌다. 법이 생긴 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시름을 덜게 됐을까.》

최 씨는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선 가족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거리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도, 흥겨운 리듬의 캐럴도 그에게는 다른 세상이다. 그의 시간은 둘째 딸 준원이를 잃은 2000년 4월 4일에 멈춰 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아직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초봄, 유치원에 다녀온 준원이는 친구 집에서 놀다 오겠다며 오후 1시경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이 수색에 나선 것은 준원이가 없어지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최 씨는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등에 짊어진 배낭엔 준원이 얼굴이 인쇄된 수천 장의 전단이 들어 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는 날은 전단이 모두 떨어졌을 때뿐이었다. 직장도 잃었다. 그 대신 그에게 남은 건 전국 각지 아동보호시설의 현황과 사람들의 제보 등을 빽빽이 적은 노트 5권.

최 씨는 2001년 다른 실종아동 8명의 부모와 함께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전실협)’를 만들었다. 이들이 추진해 온 실종아동법은 올해 5월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의 발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에선 인가 시설은 물론 미인가 시설까지 아동신상카드를 만들어 지방자치단체에 반드시 내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는 이를 다시 실종아동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전국 유일의 ‘실종아동전문기관’(02-777-0182)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법은 또 경찰과 관련 공무원에게 보호시설을 조사할 권한을 부여했다. 문제는 법이 여전히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03년 당시 3세이던 아들을 잃어버린 박혜숙(35·여) 씨는 “아직도 미인가시설에 가 보면 지자체에 보고하지 않은 실종아동들을 만날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 의원은 “일례로 10월에 충청지역 시설을 조사해 보니 연고 없는 아동 31명 가운데 신상카드가 제출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단속이 유명무실하다 보니 부모가 찾고 있는 아이를 시설기관이 마음대로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아동보호시설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단속은 해당 지자체 몫이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올해 1월에는 1999년 부산에서 실종된 정신지체인인 홍모(23) 씨가 실종 7년 만에 울산의 한 종합병원 정신병동에서 발견돼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다.

홍 씨는 7년 전 실종 2개월 만에 거리에서 발견돼 인근 파출소에 인계됐지만 경찰은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어눌한 그를 행려환자로 판단해 정신병원으로 보냈던 것. 홍 씨처럼 실종아동이 장애를 갖고 있어 보호기관이 아닌 의료시설로 보내질 경우 소재 파악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찰은 지금도 납치의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단순 가출로 사건을 처리한다.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다”는 것이 경찰의 한결같은 말이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실종 건수는 매년 평균 3000여 건. 이 가운데 200명 정도가 장기 미아로 남는다. 데이터가 전산 관리되기 전인 2003년 이전의 미아 수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준원이가 사라졌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큰딸은 이제 고등학생이 됐다. 당시 태어난 지 100일이었던 막내딸은 사라지기 전의 준원이만큼 자랐다. 하루에도 열 번씩 전화를 해 “아빠 언제 와?”라고 묻던 애교 많던 딸 준원이. 제보조차 뜸해진 요즘, 최 씨가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준원이를 아예 잊어버리는 일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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