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물었다. “그래서, 네 생각이 뭐라고?” 아차 했다. 내가 ‘나만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곳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수업시간에 ‘나만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이곳에서 작은 벽에 부닥칠 때가 많다.
영국의 수업은 한국과 다르다. 시스템도 많이 다르지만 학생과 교수의 태도 자체가 판이하다. 교수는 학생이 이론적 기반을 쌓고 생각을 키워 나가도록 돕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대가의 이론을 정리 요약해 학생의 머리에 넣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편하게 공부하던 나는 1주일에 최소한 5권 이상의 책을 읽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강의와 세미나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는 수업 방식도 독특하다. 강의는 미리 읽어온 이론의 정수를 함께 정리하는 시간이다. 세미나에서는 학생이 발제하고 학생과 교수가 자유롭게 토론한다.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의 생각과 비판을 존중한다. 엄청난 학문적 배경지식을 가진 교수와 그렇지 못한 학생의 토론은 교수가 학문적 권위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엉뚱한 발상이라도 학생의 생각이라면 일단 관심을 갖는 수업 분위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요즘 한국 대학이 많이 변하고 있다. 영어 강의가 많고 학생의 수업 참여 기회가 많이 늘어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교수와 학교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다. 학생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되는 곳에서 창의성을 펼 수 있다. 학생에게 도전할 만한 학문적 과제를 던져 주지 않는 수업방식은 우수한 학생을 뽑아 둔재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간 느끼지 못했던 학문적 성취감과 ‘내 생각’에 대한 자부심을 경험하며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낸다. 한국에서 대학 4년 동안 이렇게 공부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대학도 외형적인 면보다는 진정한 인재를 길러내도록 내실을 다질 때다. 열심히 공부하던 우수한 인재를 뽑아 토익과 자격증 공부에 열중하게 하는 한국의 대학 분위기가 새삼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국 런던대 교환학생으로 연수 중>
신희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4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