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수학 오디세이]美독립선언문과 유클리드‘원론’닮은 점은?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코멘트
■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원론’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서양 철학의 기본 틀을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수학의 발전 역시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 중에서도 특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기원전 300년경 유클리드(Euclid)가 집필한 ‘원론(Elements)’이다. 이 책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수학적 사고의 정수(精髓)를 담은 최고의 수학책으로 군림해 오면서, 성경 버금가게 많이 읽힌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13권으로 이루어진 ‘원론’은 자명한 내용을 담고 있는 5개의 공리와 5개의 공준으로 시작한다.

공리(axiom)는 아주 일반적인 원칙을 담고 있어, 예를 들면 다섯 번째 공리는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이다. 공준(postulate)은 기하학과 관련된 기본 전제로, 첫 번째 공준은 ‘두 점을 잇는 직선은 하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론’은 이처럼 당연한 공리 5개와 공준 5개를 토대로 하여 모두 465개의 명제(postulate)를 증명해 낸다. 물론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점, 선, 면과 같이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가 각 권에 선행되기는 하지만, 이 정의들을 제외한다면 결국 10개의 전제를 토대로 465개나 되는 명제를 증명하는 셈이다. ‘원론’의 지대한 가치 중의 하나는 이처럼 최소한의 공리와 공준으로 수많은 다양한 명제를 증명하여 기하학 구조를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 ‘원론’의 연역적 논증

원론 1권의 [명제 18]은 ‘삼각형에서 긴 변에 대응되는 각은 짧은 변에 대응되는 각보다 짧다’이다. 이 명제를 증명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처음에 약속한 공리와 공준, 그리고 [명제 18] 이전에 이미 증명한 명제들이다. [명제 18]의 증명 과정에서는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는 [명제 5]와 ‘삼각형의 한 외각은 나머지 두 내각보다 크다’는 [명제 16] 등이 이용된다. 이처럼 원론에 제시된 명제의 증명은 충분한 근거에 기초하여 한 단계 한 단계 연역적으로 진행되는 논증의 전형을 보여 준다.

■ ‘원론’ 형식을 따른 미국 독립선언문

미국이 1776년 7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채택한 독립선언문도 따지고 보면 ‘원론’의 형식을 띠고 있다. 다음은 독립선언문 일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독립선언문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비롯한 몇 개의 자명한 진리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새로 조직할 권리가 있는데, 영국 국왕은 미국에 대한 악행과 착취를 반복함으로써 인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독립선언문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체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공리와 같이 명백한 사실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으로 추론해 가는 ‘원론’의 방법론을 이용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스피노자 역시 자신의 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하학의 증명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보았다. 스피노자가 1675년 발표한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은 자명한 진리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인 귀결에 따라 ‘모든 것은 신’이라는 범신론을 이끌어 낸다.

수학은 명백한 기본적인 사실을 토대로 논리적 추론을 거쳐 새로운 사실을 도출하는 방법의 전형을 제시한다. 수식과 기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무미건조해 보이는 수학의 이면에 이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찍이 수학 공부를 ‘정신 체조’라고 비유했던 교육학자 페스탈로치의 말을 공감할 수 있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