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수뇌 “검찰 최악의 날” 쌓인 분노 폭발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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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검찰 론스타 사건 관련자에 대한 체포 및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검찰의 불만이 폭발했다. 3일 정상명 검찰총장(가운데)과 임승관 대검차장(오른쪽),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왼쪽) 등 검찰 수뇌부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찰청 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정 총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신원건 기자
비장한 검찰 론스타 사건 관련자에 대한 체포 및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검찰의 불만이 폭발했다. 3일 정상명 검찰총장(가운데)과 임승관 대검차장(오른쪽),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왼쪽) 등 검찰 수뇌부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찰청 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정 총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신원건 기자
‘영장기각…무죄선고…보석허가….’

3일은 검찰에 ‘최악의 날’이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법조비리 사건,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부채탕감 로비의혹 사건 등에서 법원이 이날 새벽부터 정오 전까지 불과 10여 시간 사이에 줄줄이 내린 결정이다. 하나같이 올해 들어 검찰이 심혈을 기울여 수사해 온 대형 사건들이다.

그런 탓에 이날 검찰의 대응은 단순한 불만 표시의 선을 넘어서서 억눌려 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했다.

9월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리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 비하성 발언 파문 때 정면 대응을 자제했던 검찰은 정상명 검찰총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수사 책임자인 박영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법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정면 대응에 나섰다.

이날 오후 1시 반 박 중수부장이 직접 나선 브리핑에 배석한 채동욱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국민은 론스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하는데 법원이 왜, 누구를 위해서 영장을 기각했는지 밝히라”고 격앙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동안 법원이 주요 관련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은 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해 왔던 것에 비하면 법원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실린 말이었다. 법원이 기각한 영장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재청구한 것에서는 “이미 충실히 수사했다. 또 기각할 테면 해보라”는 얘기다. 일선 검찰에서는 “사법쿠데타”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검찰의 강경 대응은 7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핵심 의혹을 풀어 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위기감과 영장이 기각되면서 이대로 수사가 종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미국 뉴욕 월가 등 전 세계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론스타 본사 경영진에 대해 청구된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은 영장 기각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검찰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켰다.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의 씨앗은 이미 오래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5월부터 7월까지 유회원(55)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 등 이번 사건과 관련된 주요 피의자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구속영장 4건을 법원이 줄줄이 기각했다. 이때마다 검찰 수뇌부는 “중수부의 고충만이 아니라 검찰 전체에 해당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은 것은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계속된 법조비리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김홍수 씨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를 잡고 검찰이 수사하면서 법원 내에서는 불만이 고조됐다. 이런 상황은 9월 이 대법원장의 검사 비하성 발언 파문으로 한 차례 더 고조됐다. 격앙된 검찰은 정면 대응을 삼갔고 법원도 물밑에서 검찰에 이해를 구했지만 근본적으로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장 발부를 엄격히 하라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검사들은 “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라고 크게 반발했다.

지금까지 갈등의 매개는 영장 문제였지만 더 근본적으로 형사사법 자체를 바라보는 검찰과 법원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법원 중심의 형사사법을 역설한 것도 갈등의 뇌관으로 항상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갈등은 서서히 봉합되겠지만 이런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있는 한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계속될 우려가 커 보인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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