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논술에 대한 오해 풀기(3)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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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도 단기간 집중학습이 효과가 있다?

논술은 단기간에 준비할 수 없고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에 겉으로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논술시험도 집중 학습을 통해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그동안 그런 식으로 합격의 영광을 안았던 사람이 많았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듯합니다. 과연 단기간 집중 학습으로 논술 시험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의 경험에만 기댈 경우 “예”라는 결론을 내릴 법도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학생들은 평소에는 거의 논술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후 몰아서 논술만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5∼6주 동안 논술만 ‘미친듯이’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크레이지 논술’이라고요.

크레이지 논술은 대체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글의 내용을 학습하는 부분입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비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전에 말했듯 주제별로 배경지식을 정리합니다. 심한 경우 암기하는 일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은 수능을 준비하면서 사회 및 도덕과목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많은 내용을 학습하였는데, 이를 논술 대비에 활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한 걸음 더 발전시켜 보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 이 내용을 무시한 채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는 논술 대비용 배경지식 참고서로 달려갑니다.

크레이지 논술의 둘째 부분은 글을 작성하는 요령을 익히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비하는 것이지요. 논리적인 글을 써본 적이 드문데 여하튼 답안을 써내야 하니, 글을 쓰는 요령, 아니 정확히는 글을 만들어 내는 요령을 익힙니다. 그 과정에 온갖 비법과 처방이 난무합니다만, 그중 상당수는 왜곡된 것이거나 미신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언젠가 논술 참고서를 보니 이런 지침이 있었습니다.

시한정해 몰아치듯 집중하면 효과 날까

통합형 논술에 상투적 작성요령 안통해

“대입 논술 답안은 1-3-1 작전으로 대응하라!”

무슨 말이냐 하면 대입 논술 답안은 서론 한 문단, 본론 세 문단, 결론 한 문단으로 구성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없습니다. 거의 신의 계시인 양 강조되고 있고,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단은 생각의 논리적인 단위입니다. 따라서 몇 가지 논의를 본론에서 할지에 따라 문단 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미리 세 문단으로 문단의 수를 정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 이런 미신도 난무합니다. 학생이 서론에서 “∼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하거나, 결론에서 “이상에서 ∼에 대해 살펴보았다”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이런 상투적인 표현은 쓰지 말라고 빨간 줄을 긋습니다. 또 학생이 논의 과정에서 “첫째, 둘째, 셋째”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리하면 이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도 합니다. 글이 딱딱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예들은 모두 미신에 해당합니다.

논술에서 상투적 표현이 감점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문학적인 글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자신만의 적절한 표현으로 드러내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논술에서는 의사소통이 기본 목표이고, 나아가 글 속에 담긴 생각이 중요합니다. 상투적 표현이라 부르는 것 중 상당수는 의사소통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첫째, 둘째, 셋째”식으로 내용을 정확하게 정리하면서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내 생각을 명료하게 분류해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글을 써봅시다. 세 항목일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먼저, 다음으로 , 마지막으로’라고 쓰면 됩니다. 여섯 항목일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먼저,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까지는 무난한데 네 번째는 무어라고 해야 할지 쓸데없는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배경지식, 다른 한편으로는 글 쓰는 요령을 익혔다가, 논술문제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을 글 쓰는 요령에 대입시켜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동안의 크레이지 논술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어느 정도 통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수능의 변별력이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논술에서 우수한 A급 답안을 쓰지 못하고 무난한 B급 답안만 쓰면 자기 수능 점수를 지켜서 합격할 수 있었는데, 크레이지 논술도 열심히 하면 B급 답안 흉내는 대충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1400자 내외의 짧은 글의 경우에만 통했지 2000자 이상으로 답안 분량이 늘면 이런 방법으로는 B급 답안도 힘들게 됩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통합교과형 논술의 경우 크레이지 논술식 접근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논술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대입 논술의 출제 목표는 단기간에 급조하듯 준비한 학생과 3년 내내 성실히 능력을 키운 학생을 쉽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요? 글쓰는 과정에 필요한 능력들을 나누어 하나하나 평가하는 ‘과정중심 평가’를 통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가 곧 있을 것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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