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조광]인문학은 학문의 ‘생명수’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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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문제가 광범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의를 담은 ‘인문학 선언’을 발표했다. 인문학자로서의 반성과 각오가 포함되어 있는 이 선언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켜 주었다.

돌이켜 보건대, 상당수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과를 선택하는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지원하는 학생들의 성적 등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말도 있다. 여러 대학에서는 인문계열 학과 대학원 지망생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음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는 인문계 학과가 폐과되는 사태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 교양강의에서 인문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지며, 실용적 학문이 교양의 주류인 양 주장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문학의 위기 상황에는 다 원인이 있다. 우선 인문학이 처해 왔던 외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광복 이후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압축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성장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는 너무 실용과 효율만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서 인간 삶의 기본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점차 망각되어 갔다.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인문학 자체에 있지 않고 인문학자들의 위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진단도 가능하다. 분명 인문학과 인문학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인문학의 가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인문학자들 때문에 나타난 사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 위기의 더 큰 책임 소재를 찾는다면 역시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인문 정신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따진다. 인문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인문 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인문적 가치에 앞서게 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해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과학자에게 건강한 인문정신이 결여된다면, 과학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우리의 구체적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세계적 갑부인 빌 게이츠 씨는 어찌 보면 인문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인문학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든 이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학문의 세계에서 지하수의 수맥과 같다. 사람들은 지하수에서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끌어올려 마신다. 지하수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의 보전과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하수가 오염되거나 고갈되어 버리면 지상의 생명체도 위협을 받고, 산업 활동마저도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인문학이 없이는 다른 학문도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발전을 위한 사회의 인식과 국가의 배려가 요청된다. 인문학 분야에 관한 2005년도의 통계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지난해 연구개발에 관한 정부의 총예산은 7조8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인문학 연구 지원비는 556억 원으로 0.71%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발 이런 말들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인문학의 연구 성과가 다른 학문의 발전의 토대가 되고 나아가 국민 모두가 그 인문학의 열매를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광 고려대 문과대학장·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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