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C세대’]<下>모이고 행동한다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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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중 수능 반대 페스티벌 기획단, 하헌진 플레이 태그 스태프, 이태한 한국고교학생회연합회 부대변인(앞줄 왼쪽부터) 김규현 플레이 태그 기획자, 정일안 플레이 태그 스태프, 김댁건 한고학련 의장(뒷줄 왼쪽부터) 등 오프라인 모임을 준비하는 10대들. 플레이 태그, 두발 자율화, 수능 반대 페스티벌 등은 놀이 문화이자 주장을 전달하는 형식이다. 강병기 기자
김판중 수능 반대 페스티벌 기획단, 하헌진 플레이 태그 스태프, 이태한 한국고교학생회연합회 부대변인(앞줄 왼쪽부터) 김규현 플레이 태그 기획자, 정일안 플레이 태그 스태프, 김댁건 한고학련 의장(뒷줄 왼쪽부터) 등 오프라인 모임을 준비하는 10대들. 플레이 태그, 두발 자율화, 수능 반대 페스티벌 등은 놀이 문화이자 주장을 전달하는 형식이다. 강병기 기자
《“무슨 일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게, 우리가 계획한 게임에만 충실하자고.” “한꺼번에 몰리니까 안전사고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자.” 10일 오후 하헌진(18) 군과 ‘2006 플레이 태그’ 스태프 몇 명은 인터넷 채팅으로 기획회의를 가졌다. 장소 섭외, 게임 규칙, 진행 방법, 안전사고 대비책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플레이 태그란 일종의 집단 술래잡기 놀이. 2003년 한 의류회사 광고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이 놀이문화는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해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는 이 놀이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3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올해 말 또 한번의 대규모 플레이 태그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10대들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활동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만남이 다양한 형태로 잦아지고 있다. 가상세계를 벗어나 현실세계에서 오감(五感)으로 체험해 보자는 것. 최근 이런 모임에 10대들만의 고민과 주장을 담은 변화가 보인다.

이런 모임의 시초가 된 것은 ‘플래시 몹’.

2002년 미국 정보화사회 분야 전문가 하워드 라인골드 씨가 그의 책에서 ‘플래시 크라우드’(특정 사이트의 접속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와 ‘스마트 몹’(뜻을 같이하는 군중)을 합성해 처음 사용한 단어인 ‘플래시 몹’이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최근 서울역에 10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역사 안을 집단으로 기어가는 등 기성세대가 보기에 이상한 행동도 나타난다. 하지만 10대들은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이슈가 됐을 때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모여 ‘만세 삼창’을 하는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10대 청소년들만 참여할 수 있는 웹사이트 아이두넷의 운영진 중 한 명인 서승환(18) 군은 “그냥 ‘모여서 즐기자’는 모임에서부터 ‘두발 자율화’나 ‘대입제도 개선’과 같은 다양한 주장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형식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내용은 단순 유희에서 메시지를 담는 쪽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

지난달 23일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수능 반대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김판중(18) 군은 “반대라는 주장과 축제라는 형식이 뒤엉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해 즐기는 가운데 고민을 해 보자는 취지였다”며 “형식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실제 참가자들의 고민은 심각했다”고 말했다.

올해 6월 출범한 한국고교학생회연합회는 전국 37개고 학생회로 이뤄졌다. 이 연합회 의장 김백건(18) 군은 “처음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산하 단체라는 오해를 받아 참여했던 학교가 많이 탈퇴했다”며 “우리는 이념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수 고교생을 위한 의견 창구”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우리의 생각과 의견이 온라인에만 국한되고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답답해 이런 모임을 만들었다”며 “우리만의 형식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플레이 태그:

인터넷을 통해 연락된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장소에 모여 술래잡기와 같은 약속된 놀이를 일정 시간 함께 즐기는 행위.

:플래시 몹:

인터넷을 통해 연락된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장소에 모여 약속된 행동만 동시에 하고 즉각 헤어지는 행위.

■ 왜 모여 행동하나

최근 10대들이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들은 자주 찾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 등에 글을 올리던 수준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사이트나 웹진(인터넷 잡지)을 만들거나 모임을 만들어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10대들이 개방성과 자유분방함을 느끼던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의 폐쇄성을 스스로 깨닫고 집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언론재단 유선영 연구위원은 “놀이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며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 상호작용이 있을 때 재미와 집중력이 배가되는 것”이라며 “‘플래시 몹’이나 ‘플레이 태그’ 등은 이러한 인간의 기본 감성을 되찾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10대들만이 공유하던 문화나 고민을 세상에 알리려는 외침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서강대 박호성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능 반대 페스티벌이나 두발자율화처럼 청소년들의 사회참여가 확산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민주화가 달성됐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무조건 강요하고 복종하던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

민주노동당 최연소 대의원으로 화제가 됐던 이계덕(19·성공회대 신방과) 씨는 “인터넷, 문자메시지가 생활화된 ‘C세대’는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교육, 인권 등의 문제엔 즉흥적이고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특징이 있다”며 “월드컵, 촛불시위 등을 통해 ‘집단행동’이라는 문화에 눈을 뜨게 된 10대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큰 사회적 의미를 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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