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7>미학 오디세이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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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는 탐미(耽美)의 시기다. 온종일 음악을 듣고 춤이나 영화에 몰두하는 10대들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그들의 풍부한 감성을 제대로 고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청소년 시기에 저급한 문화에 중독된 이들은 ‘생각 없는 문화 소비자’로 남을 뿐이지만, 미적 감수성을 튼실하게 갖춘 아이들은 예술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뿐더러 문화 생산자로서 사회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색하는 미학(美學)은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학문이다. 감상자의 수동적인 처지에서 벗어나 성찰을 통해 미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세우게 하기 때문이다. ‘미학 오디세이’는 청소년들을 미의 탐구로 이끄는 좋은 안내자다. 이 책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부터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색을 섬세하게 소개해 준다.

예술은 항상 시대를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서양 중세의 회화들은 사실성 면에서 조악하기 그지없다. 중세의 미술 수준이 고대 그리스보다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했던 중세인들은 덧없는 일상보다는 영원한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으면 스러지고 말 신체를 세밀히 묘사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상징을 통해 신적인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건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항상 똑같다. 성화인 이콘(icon)이 항상 똑같은 표정에 비슷한 구도로 되어 있는 것도, 대상을 그릴 때 원근법을 무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의 세계관이 지배한 근대에 와서는 미술에서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가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카메라가 등장하자 미술은 사실을 모사(模寫)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예술의 가치는 독창적인 느낌의 표현으로 옮겨 가게 된다. 예술에서 사실적 묘사가 사라지고 독창성이 강조되면 될수록 해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뒤샹의 ‘샘(Fountain)’은 그 자체로는 눕혀 놓은 변기일 뿐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변기는 그 가치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다.

해석의 중요성은 예술 세계에서만 강조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해석은 이미 현실을 잡아먹고 있다. 언론 매체를 통해 현실을 접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체가 어떻게 사실을 ‘해석’하여 알렸는지에 따라 사안의 중요성이 다르게 다가온다.

‘미학 오디세이’가 펼치는 장대한 탐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독자는 예술을 넘어 세상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빠지게 된다. 감수성에 불타는 10대들을 ‘문사철(文史哲)’의 깊은 세계로 이끄는 데 손색이 없는 안내자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미학 오디세이’는 결코 무거운 책이 아니다. 장(章)마다 제시되는 에스헤르(Escher)와 마그리트의 수수께끼 그림들, 진중권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좇다 보면 ‘책을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보고 즐긴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싶다. 가벼운 서술로 깊고 넓은 성찰을 이끄는 책, ‘미학 오디세이’가 10년이 넘게 청소년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며 고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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