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사이코패스’ 늘어가는 사회

  • 입력 2005년 4월 19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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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psychopath)를 조심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질서를 파괴하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이라 정의된다. 가히 ‘인간 흉기’가 아닌가.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최근 사이코패스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들을 교정(矯正)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추리소설, 드라마에서도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필립 카우프먼 감독의 최근작 영화 ‘블랙아웃’도 사이코패스를 다루고 있다.

4월 10일 방영된 ‘KBS 스페셜-악의 가면, 사이코패스’는 한국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흉악범 상당수가 심리검사에서 사이코패스로 판명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이들의 두뇌는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이 약한 데다 공격성 억제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된다고 한다.

▼잔인한 공격-음해… 곳곳 활개▼

물론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졌다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우한 환경에 빠지면 그 기질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이코패스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들은 금융사기, 횡령 등 경제사범이 될 확률이 큰 편이다. 때로는 정치인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대량 학살을 지휘한 히틀러와 스탈린도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추정된다.

빼어난 다큐멘터리인 이 TV 프로그램을 보고 나니 머리가 무거워진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이코패스도 적지 않다고 하니 더욱 걱정스럽다. 정치인, 법조인, 행정관료, 기업인, 금융인, 종교인, 교육자 가운데 요직을 차지한 사이코패스를 상상해 보라. 그 악영향을 상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충동질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는 데 천재였다. 연설할 때 황혼 빛을 등 뒤에 깔고 나타나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수법을 썼다. 오죽하면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조차 판단력이 마비돼 히틀러를 추종했을까.

한국에서 교묘한 겉치장 덕분에 유력 정치인으로 떠오른 사이코패스는 얼마나 있을까. 그들이 유권자들을 현혹해 당선된 뒤 무책임한 행각을 일삼는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클까. 국운(國運)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 양질의 정치인이 사이코패스와의 진흙탕 싸움에서 져 핵심 자리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를 가리는 심리테스트를 벌일 수 없다는 점이다. 차세대 리더 후보 정치인 가운데 혹 사이코패스는 없을까.

사이코패스 기업인은 어떤가. 소비자 이익은 안중에 없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할 것이다. 이런 악덕 기업인이 득세하면 지속적인 번영이 이뤄질 수 없다.

기업에서 오너는 사이코패스 전문경영인에게 종종 속는다. 사이코패스는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오너의 환심을 얻고는 자리를 유지하는 데 매달린다. 그들에게 은행금고를 맡기면 금융사고가 터지곤 한다.

정부, 기업, 학교 등 여러 조직에서 사이코패스 소질을 가진 사람이 더러 보인다. 남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음해한다. 그런데도 ‘추진력 좋은 인물’로 비쳐 고속출세하기도 한다.

▼냉정한 머리-따뜻한 가슴 필요▼

승리자만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회에서는 사이코패스가 활개 칠 것이다.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바로 ‘냉정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힘 아닐까.

우리 사회를 사이코패스의 위험성으로부터 잘 지키려면 이벤트성 행동, 인기영합적 발언을 제대로 가려내는 이성(理性)이 작동해야 한다. 또 흉포한 야성(野性)마저 감싸 안을 넓고 따스한 가슴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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