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사랑, 훈훈한 세밑]<中>극빈층으로 내몰리는 서민층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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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 씨(45·여)는 지난 1년이 악몽 같기만 하다. 1년 전만 해도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분식집에서 일해 버는 150만 원으로 남편과 아들을 포함해 세 가족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생계유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올해 3월 일하던 분식집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으면서부터. 덤프트럭을 운전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만둔 남편은 여전히 직장을 못 구한 상태였다.

유일한 수입원이 떨어져 나가면서 남편의 손찌검이 점차 심해졌다. 5월 어느 날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남편에게 얻어맞은 김 씨는 ‘이렇게 살다가는 맞아죽겠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이혼했다.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교회 전도사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해 6월부터 지하철역 주변에서 토스트 장사를 했지만 하루 수입은 1만∼2만 원 정도. 그나마 남편에게 얻어맞은 후유증 때문인지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토스트 장사마저도 지난달에 그만둬야 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강모 할머니(71)도 짧은 시간에 극빈층으로 곤두박질쳤다. 군인이었던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할머니는 변호사사무실에서 착실하게 일하던 아들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살았다.

그런데 3년 전 사업을 시작한 아들은 2년이 채 못돼 부도를 냈고, 은행과 카드사의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다. 곧 며느리마저 가출해 강 할머니는 졸지에 손녀딸 2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사무소가 실시하는 취로사업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30만 원 선. 최근엔 무릎이 아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열 명 중 한 명은 빈곤층=김 씨와 강 할머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0월 현재 소득이 최저생계비(올해 4인 가족 기준 105만5090원)에 미치지 못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은 141만5000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4만1000명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 수준인 ‘잠재적 빈곤층’(109만여 명)과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전세비 등 재산(중소도시 3100만 원 이상)이 고려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非)수급 빈곤층’(248만여 명)을 포함하면 전체 빈곤층이 5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 10명 당 한 명은 빈곤층에 속하는 셈이다.

▽늘어나는 실업자와 노숙자=노동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실직으로 인한 실업급여 신청자는 42만6625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5만 명 가까이 늘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43만8465명) 이후 최대 수치다.

거리의 노숙자들도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2700명 선까지 줄었던 서울의 노숙자는 최근 들어 2900명 수준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는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드물었던 20, 30대 청년 노숙자가 전체 노숙자의 10∼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여전히 부족한 복지 예산=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정부의 복지예산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辛泳錫·연구위원) 박사는 “불황이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이 급속히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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