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사랑, 훈훈한 세밑]<上>비닐하우스-쪽방村의 이웃들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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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의 희망으로 설레야 할 세밑이지만 우리 주변엔 당장의 추위와 생계를 걱정하는 이웃들이 많다. 26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화훼마을. 매서워진 겨울 추위 속에서 난방비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권주훈 기자
새해에의 희망으로 설레야 할 세밑이지만 우리 주변엔 당장의 추위와 생계를 걱정하는 이웃들이 많다. 26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화훼마을. 매서워진 겨울 추위 속에서 난방비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권주훈 기자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다듬어보는 세밑. 하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당장의 추위와 생계’가 더욱 막막한 계절이다. 특히 극빈층에게 올겨울은 한없이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의 삶의 현장, 그리고 넉넉지 않은 가운데서도 이들을 챙기는 우리 사회의 훈훈한 모습 등을 3회 시리즈로 소개한다.》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연모 할머니(67)가 사는 비닐하우스 안은 써늘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방이 차서 어쩌지….” 할머니는 느닷없이 찾아온 기자에게 연방 미안해했다. 기름값이 아까워 보일러를 쓰지 않고, 보일러를 안 쓰니 온수도 없다.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을 때는 대야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로 살짝 데워 쓴다고 한다.

할머니는 낮에 지팡이를 짚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폐품을 주워 팔아 하루에 몇천 원을 번다. 아들이 셋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지방에서 노동, 미싱 등을 하며 사는 아들들도 올해는 생활이 어려워 어머니를 도와주기 어려운 형편이다.

아들들이 부정기적으로 부쳐주는 4만∼5만 원으로 쌀을 사고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버리는 야채를 받아와 반찬으로 먹는다.

“겨우 먹고 사는 애들한테 손 벌리기 미안해. 공부도 못 시키고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는데 부모라고 무슨 낯이 있겠어.”

그나마 거동을 할 수 있는 연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이 마을 한마음교회 주광열(朱光烈) 목사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40여 개 동 217가구 가운데 “아픈 사람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다”는 것.

연 할머니 이웃인 이모 씨(41·여) 집에 들어서려 하자 버럭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췌장염과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앓고 있는 이 씨의 남편이었다. 1991년에 쓰러져 누워 있으면서도 신경이 예민해져 낯선 사람이 오면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정부에서 매달 61만 원을 받아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주민 김모 씨(58)는 “이 동네 사람들은 겨울다운 겨울이 오는 것이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난방비도 문제지만 화재가 특히 두렵기 때문. 합판과 각목으로 뼈대를 세우고 지붕에 보온용 천을 덮은, 다닥다닥 붙은 비닐하우스는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가 없다. 1999년에는 마을 전체가 다 타버리기도 했다.

겨울이 고통스럽기는 510여 개의 쪽방이 몰려 있는 서울 영등포역 뒤편 ‘쪽방촌’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거주자들에게 쉼터 역할을 해온 쪽방촌 내 광야교회가 도시미관 정비사업으로 인해 내년 3월 쪽방 50여 개와 함께 철거될 예정이어서 이곳 사람들에게 올 겨울은 한없이 야속한 계절이다.

26일 오전 7시 광야교회에 들어섰다. 30평 남짓한 예배공간에 80여 명이 ‘칼잠’을 자고 있었다. 아침 배식은 죽 한 그릇에 김치 몇 점이 전부. 이 식사를 위해 인근 쪽방 거주자들, 영등포역 노숙인, 인근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150명 넘게 몰려왔다.

비닐로 막은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1평짜리 쪽방에서 만난 윤모 씨(34)는 “이삿짐 옮기는 일을 하는데 요즘 경기가 나빠 지난달부터 아예 일거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 노숙인쉼터의 최동귀(崔東貴) 사회복지사는 “주로 건설노동을 하는 쪽방 거주자들이 방세를 내지 못하면 쫓겨나 거리노숙자가 된다”며 “요즘은 불경기로 일감이 없어 쪽방 사람들에겐 특히 ‘위기의 겨울’”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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