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일제잔재 보부상 대신 부보상으로”

  • 입력 2004년 12월 12일 21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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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褓負商)이냐, 부보상(負褓商)이냐.’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보부상’이라는 표현은 식민지적 잔재이기 때문에 ‘부보상’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학자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본보가 8일자 A27면(지방판·중부-호남-제주)에 ‘충남 내포문화권 본격 개발된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에서 ‘보부상촌’ ‘보부상 조직을 관리하던 기관인 예덕상무사’ 등의 표현을 쓴 데 대해 “부보상으로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독자 e메일이 적지 않게 답지했다.

▽각종 자료마다 혼용=취재 결과 현재 각종 국어사전과 백과사전 등에서는 두 가지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

국어사전(동아, 민중)은 모두 보부상을 표제어로 삼아 설명한 뒤 부보상도 같은 뜻이라고 표기했다.

두산백과사전과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등은 예산보부상전시관 같은 고유명사를 제외하고는 ‘부보상’이라고 쓰고 있지만 포털사이트 ‘다음’ 등은 ‘보부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보부상’ ‘부보상’ 논란=이훈섭 경기대 교수(경영학)는 자신의 논문에서 보부상이라는 용어는 일제가 1925년 ‘조선인의 상업’이라는 책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태조 이성계가 중상주의 정책 차원에서 행상의 대표자인 백달원에게 ‘유아부보상지인장(唯我負褓商之印章)’이라고 새긴 옥도장을 하사한 이후 1925년 이전까지는 부보상이라는 용어만 쓰였다는 것.

그는 “지게에 먹거리를 지고 다니며 팔던 부상(남자)이 봇짐에 옷가지와 장식품을 싸가지고 다니며 팔던 보상(여자) 보다 먼저 생겼으니 발생학적으로도 부보상이 맞다”며 ‘사통팔달’이라는 사이트(www.bubosang.net) 등을 통해 부보상 용어 회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일제가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적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부상 유품을 수집해 예산보부상유품전시관을 만들고 ‘예덕상무사’라는 저서도 펴낸 향토사학자 윤규상씨는 “발생학적인 측면에서 부보상이 맞다고 보지만 이를 일제의 책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발음상 편리했거나 고가의 물품을 팔던 보상의 세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보부상이라고 불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성계가 부보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백달원이 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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