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평준화 덕분이라고?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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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멍청하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낸 윌리엄 베넷이 미국 공교육을 걱정하며 한 말이다.

또 IBM 회장과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교육부 차관이었던 데이비드 키언스는 “공교육이 경쟁력을 망가뜨렸다. 이대로 가면 기업들은 읽기, 쓰기, 덧셈, 뺄셈도 모르는 근로자를 1년에 100만 명씩 써야 할 판”이라며 학력 수준을 개탄했다.

그러나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보고서 발표 이후 우리 교육당국이 보인 반응은 수년 전 미국의 고위 교육책임자들이 고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로 나타나는 등 국력 등을 감안할 때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우리의 성적표를 부러워하는 선진국도 많은 만큼 굳이 깎아내리거나 부풀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보고서가 발표된 뒤 ‘제7차 교육과정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평준화의 우수성이 입증됐다’며 들뜬 분위기였다. 안병영(安秉永) 교육부총리도 “우리 교육의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라며 고무됐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최상위권이 점점 얇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 분야는 1위에서 4위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일부에선 평준화 해제 주장을 의식해서인지 ‘평준화 덕분에 실력이 좋아졌다’는 등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학교에 대한 태도(37위)와 소속감(35위), 교사 지도에 대한 학생평가(35위), 교사의 헌신도(35위) 등 부정적인 내용을 교육당국이 보도자료에서 빼놓은 데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현재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달에 우주선을 먼저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뼈를 깎는 ‘반성’ 덕분이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인철 교육생활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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