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수능不正, 책임否定

  • 입력 2004년 12월 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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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광주에서 처음 적발돼 전국으로 경찰 수사가 확대된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부정행위 연루자만도 300명이 넘는데 수사가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어 얼마나 더 많은 연루자가 나올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장래가 구만리 같은 학생들이 관련된 일이라 지나친 수사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왕 수사에 착수했으니 의혹을 깨끗이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득을 보는 학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무리 교묘한 범죄라도 결국은 들통 나고, 작은 이득을 취하려다 오히려 크게 손해 볼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줘 제2, 제3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몇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의 학생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우선 놀랍다. 게다가 140명이 넘는 학생이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그룹도 있고 입시학원장과 심지어 학부모까지 연루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광주에서는 작년에도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교육당국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인터넷에 경찰 수사에서 밝혀진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고발이 있었고, 더구나 수험생의 구체적 제보까지 있었는데도 교육당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일 탓해봐야 속만 터질 노릇이지만 사후에 적발돼 시험 무효 처리되고 형사입건까지 된 학생들의 처지를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에 되짚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광주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8%가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현 입시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또 약 27%는 ‘편법이 만연된 사회분위기’를, 약 12%는 ‘수험생 개인의 도덕불감증’을 들었다.

결국 10명 중 8명 이상이 우리 사회와 제도의 문제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 셈이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대체로 공감이 가는 지적 아닌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앞뒤 생각지 않고 부정행위에 나선 학생들을 두둔할 생각은 결코 없다. 그들은 응분의 대가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편법이 만연된 사회분위기와 수능시험 한 번으로 일생이 좌우되는 입시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부정의 유혹을 차단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물론이고 특히 교육당국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입시관리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은 1992년 경기 부천에서 발생한 후기대 학력고사 문제지 도난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 하나 없는 게 참 희한하다. 당시엔 교육부장관이 경질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 흔한 위원회라도 하나 만들어 원인을 따지고 책임소재를 가린 뒤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진녕 사회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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