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천 중구 전동 제물포고 3학년 2반 교실. 학기말고사가 한창이었다.
감독교사는 시험지를 나눠주고 답안지 기재 요령을 설명한 뒤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은 곧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각자 문제를 푸는 데 몰두했다. 시험이 끝나기 10분 전 다시 감독교사가 들어와 학생들의 답안지를 거둬 갔다.
이 학교의 무감독시험은 개교 2년 뒤인 1956년부터 시작됐다. 고 길영희 초대교장이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을 정하며 시험 감독을 없앤 것.
그 후 매년 3월 신입생들은 운동장에서 2, 3학년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심을 잃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갖는다. “양심이 나와 국가를 지키는 근본이며 양심에 저촉되는 단 하나의 행동도 하지 않겠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는 학급별로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는 구호를 외친 뒤 시험에 들어간다. 시험이 끝나면 만일에 부정행위가 있었을 경우에 대비해 전교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대학 입시에서 고교 내신 성적 반영률이 높아지는 등 그간 입시제도가 수없이 바뀌었지만 시험감독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경남 진주시의 삼현여고와 밀양시의 밀성여중도 각각 32년, 27년간 ‘무감독 시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시험시간 중엔 1개 층에 교사 1명씩 배치돼 가끔 오가면서 학생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해 준다. 교사와 학생들은 시험 시작 전 ‘솟아라 양심의 샘이여…훔쳐 적은 정답 하나, 지워진 양심 하나’ 등의 구호를 낭독한다.
이 밖에도 서울 서대문구 중앙여고, 경기 이천시의 양정여고, 경북 김천시 성의여고, 등 전국적으로 10여 개 학교가 무감독 시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진주=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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