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포高-진주 삼현女高 수십년째 ‘無감독’

  • 입력 2004년 12월 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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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감독 선생님이 없으니 아주 가끔 커닝 유혹이 생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신뢰를 잃을까봐 막상 부정행위를 하지는 못해요.”

지난주 인천 중구 전동 제물포고 3학년 2반 교실. 학기말고사가 한창이었다.

감독교사는 시험지를 나눠주고 답안지 기재 요령을 설명한 뒤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은 곧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각자 문제를 푸는 데 몰두했다. 시험이 끝나기 10분 전 다시 감독교사가 들어와 학생들의 답안지를 거둬 갔다.

이 학교의 무감독시험은 개교 2년 뒤인 1956년부터 시작됐다. 고 길영희 초대교장이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을 정하며 시험 감독을 없앤 것.

그 후 매년 3월 신입생들은 운동장에서 2, 3학년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심을 잃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갖는다. “양심이 나와 국가를 지키는 근본이며 양심에 저촉되는 단 하나의 행동도 하지 않겠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는 학급별로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는 구호를 외친 뒤 시험에 들어간다. 시험이 끝나면 만일에 부정행위가 있었을 경우에 대비해 전교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대학 입시에서 고교 내신 성적 반영률이 높아지는 등 그간 입시제도가 수없이 바뀌었지만 시험감독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경남 진주시의 삼현여고와 밀양시의 밀성여중도 각각 32년, 27년간 ‘무감독 시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시험시간 중엔 1개 층에 교사 1명씩 배치돼 가끔 오가면서 학생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해 준다. 교사와 학생들은 시험 시작 전 ‘솟아라 양심의 샘이여…훔쳐 적은 정답 하나, 지워진 양심 하나’ 등의 구호를 낭독한다.

이 밖에도 서울 서대문구 중앙여고, 경기 이천시의 양정여고, 경북 김천시 성의여고, 등 전국적으로 10여 개 학교가 무감독 시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진주=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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