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 현주소]<上>일상 속의 차별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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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14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7차 세계국가인권기구대회'에 맞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김창국)와 공동기획한 '차별 시리즈'를 게재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빚어지는 차별에서부터 법적 제도적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이르기까지 차별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직장생활 3년째인 박모씨(29·여)는 지난해 결혼 이후 부서를 옮겼다. ‘아줌마’에겐 잔업이 많은 마케팅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요즘 같은 불황에 참자’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올해 임신을 하자 회사에서 아예 대놓고 사직을 권유하고 있다. 믿었던 상사에게 출산휴가를 건의해 봤지만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

회사원 한모씨(31·여)는 최근 사귀던 2세 연하의 남성과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 “나 아니면 널 누가 데리고 가느냐”는 남자친구의 오만한 태도도 헤어진 이유.

그러나 한씨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건 친구와 가족들이다. “네가 나이가 몇인데 정신 못 차리고 튕기느냐”며 한씨를 몰아세운다. 따지고 들려 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해 대꾸도 쉽지 않다.

본보의 13일자 ‘해외 인권 NGO 설문조사’ 조사(A1·9면 보도)에서도 나타났듯 한국의 인권 상황은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국가들에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정도로 사회제도적 장치는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평범한 생활 속에서 느끼는 ‘일상적인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교문화의 산물인 남성 우대 및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분위기가 자신도 모르게 차별문화를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차별에 무감각하다”=한국 사회의 차별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것이 차별 행위인지도 모른 채 일상처럼 벌어진다. 또 막상 피해자가 항의해도 가해자측에선 “별 것도 아닌 일로 심각하게 군다”고 반응하기 십상이다.

외모 차별은 특히나 심하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키와 몸무게, 외모 등으로 인한 차별 인식도를 묻는 항목에서 평균 36.7%만이 이 같은 차별을 인식했다고 대답했다. 이는 장애인이나 동성애자의 차별 인식도가 80%를 넘었던 점과 비교할 때 ‘일상적 차별’에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이에 대한 차별은 고령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건수만 해도 취업에 연령제한을 두는 등 연령차별 관련이 2001년에는 1건밖에 없었으나 2002년 6건, 2003년 24건이었고 올해는 벌써 38건을 넘어섰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경기불황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가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차별 해소, 아직 멀었다”=1972년부터 매년 각국의 인권 상황을 등급별로 발표해온 ‘프리덤하우스’의 2004년 평가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자유도는 ‘2등급’.

프리덤하우스의 기준에 따라 ‘자유국가’로 분류되긴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0개국만을 놓고 보면 멕시코와 함께 최하위권이다. 여기에는 법과 제도의 문제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 만연한 관습적인 차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

미국 국무부가 올해 2월에 발표한 ‘한국인권보고서’도 “전통적인 유교적 관습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여성에 대한 법적 사회적 차별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법무부 인권과 김현철 검사는 “그간 꾸준히 인권 신장을 위한 법 정비가 진행돼 제도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차별은 상당히 감소했다”며 “그러나 아직도 국민 개개인에게 남아 있는 무의식적인 차별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의 서영호 차별조사2과장은 “일상적인 차별은 사회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느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가해자가 차별을 정확히 인식해야 함은 물론 피해자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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