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첫 女대법관에 거는 기대

  • 입력 2004년 7월 23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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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보루’로 알려진 미국 연방대법원에도 아름답지 못한 역사가 있다.

1870년 일리노이주의 가정주부였던 미라 브래드웰은 어렵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주 정부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때까지 미국에서는 여성 법률가가 없었다. 그는 연방대법원에 제소했다.

그의 청구는 기각됐다. “본질적으로 여성은 가정의 영역에만 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법률가 자격을 주지 않는 조치는 정당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성은 법률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중에 대법관을 지낸 컬럼비아 법과대학원(로스쿨)의 하란 스톤 학장은 1927년 “내 시체를 넘기 전에는 여성은 로스쿨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하버드 로스쿨도 1950년까지 여성의 입학을 금지했다.

여성의 법조계 진출은 1970년대에 본격화했고,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샌드라 오코너 판사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1993년에는 컬럼비아 로스쿨 출신의 루스 긴스버그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다.

우리도 이제 최초의 여성 대법관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3일 대법원장에 의해 임명 제청된 김영란(金英蘭) 판사는 국회 동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무난히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김 판사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단지 ‘최초의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를 잘 아는 법조인들은 그가 ‘개혁적 성향’과 함께 ‘안정과 여유’의 미덕도 갖추었다고 말한다.

사실 판사도 세상의 흐름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변화의 시대에는 진보와 정의를, 사회가 안정됐을 때는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판결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법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가치 상대주의’는 거꾸로 혼란기에 법적 안정을, 안정기에 진보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14석의 ‘정의’(Justice·대법관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여성 최초로 한자리를 차지한 김 판사에게 국민과 사회가 기대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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