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독립운동硏 이정은씨 ‘유관순’펴내…논란 종지부

  • 입력 2004년 7월 20일 21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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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만세 시위대를 향한 일본 군대의 총구를 몸으로 막을 정도로 강인했지만 5촌 조카에게 손수 뜨개질한 모자를 선물할 정도로 섬세했습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20년 동안 3·1운동을 연구해온 이정은(李廷銀·50) 수석연구원이 충남 천안시 등의 후원을 받아 철저한 학문적 고증을 거친 ‘유관순’(520쪽·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을 펴냈다.

이 연구원은 친구 보각스님 등 유 열사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호적과 수형기록표 등 공식 기록을 자료로 삼았다.

국내에는 50여종의 유관순 전기가 나와 있으나 일부는 순국일 등 기본적 사항조차 엇갈리고 있다.

그는 “유 열사는 ‘칙칙! 폭폭!’이라는 기차소리도 ‘대한! 독립!’이라고 들린다고 친구들에게 말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투철했다”고 전했다.

“유 열사는 키가 169.7cm로 당시 여학생 평균보다 약 20cm나 컸으며, 아주머니처럼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각 고을을 다니며 독립운동 참여를 설득했고 시위 당일 무단 발포하는 일본 군대의 총구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인명의 희생을 막으려 했어요.”

이 연구원은 “함께 시위를 주도했던 조인원 등 13명이 제3심인 고등법원에 상고할 때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며 상고를 포기한 사실은 이번 평전에서 새로 밝혀낸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 열사를 어느 순간에 돌출한 존재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천안) 정서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유 열사 가족은 딸에게 근대교육을 시켰으며 천안지역은 동학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등 권력에 항거한 전통이 있다.

이 책은 권말 부록에서 그간 논란이 돼온 유관순의 한자이름(柳寬順), 순국일(1920년 9월 28일·양력), 탄신일(1902년 12월 16일·양력) 등을 일괄적으로 정리했다.

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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