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崔교수 화해권고]시효 논란 피하면서 국가책임 인정

  • 입력 2004년 7월 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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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길(崔鍾吉) 서울대 법대 교수의 죽음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법적 책임’을 가리기에 앞서 ‘화해권고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31년 전에 발생한 의문사 사건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의 고충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 개요=최 교수는 1973년 10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에 자진해 들어가 조사를 받다 숨졌다. 중정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길이 간첩임을 자백한 뒤 조직보호를 위해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과 인권단체들은 30여년간 최 교수의 사인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최 교수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 재판 중 당시 중정 공작과장 안모씨(75)는 “최 교수는 간첩이라고 자백한 적이 없고 투신자살 발표는 조작된 것”이라고 증언했으며 국가정보원은 “최 교수 사망 원인의 진실 여부를 떠나 유가족에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해법=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원고들은 많든 적든 국가 배상금을 받으면 최 교수를 기념하는 공익단체를 설립해 사회에 기여하려 하고 있고, 피고(국가)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며 피해를 보상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국가의 역사적 도덕적 책무 등을 고려하면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과거사를 판결보다는 ‘당사자들의 화해’ 형태로 푸는 것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 어울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韓相範) 위원장은 “재판부가 30여년 전 사망사건의 원인 및 배상시효 등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차선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화해권고 결정은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판결의 효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불복하면 재판부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재판부는 “최 교수가 국가에 의해 타살됐는지와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는지에 대해서는 법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의가 제기돼 판결로 갈 경우에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의 아들 최광준(崔光濬) 경희대 법대 교수는 대리인인 윤영환 변호사를 통해 “가족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전했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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