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의 힘’ 상징… 靑서 개혁 시금석 삼은듯

  • 입력 2004년 6월 16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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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수 검찰총장의 사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폐지’ 논란은 일단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갈등은 미봉된 것일 뿐이며 잠복해 있다가 조만간 재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갈등의 근본 원인인 ‘검찰 개혁’ 문제에 대해 청와대 및 법무부와 검찰간의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중수부 논란은 검찰 개혁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기도 하다.

▽논란의 경위=“중수부 수사기능을 없애는 법무부 개혁구상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방송 보도가 13일 터져나왔다. 다음날 송 총장은 이에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음모다.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내 목을 치겠다”는 강경발언을 했다. 당시 청와대나 법무부가 해당 보도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 터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송 총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실체도 드러나지 않은 사안을 놓고 공방이 오간 셈이지만 바탕에는 검-청간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왜 중수부 축소인가=‘사정(司正)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는 제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4월 대검 특별수사부가 이름을 바꾸어 발족했다.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직접적인 지휘 통제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대한 판단이 필요하거나 수사보안 유지가 필요한 사건은 중수부가 맡는 것이 관행.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 등 수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중수부의 칼날에 스러져갔다.

중수부는 최근 대선자금 수사등에서 보듯 거악(巨惡)을 척결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표적사정과 축소은폐 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 ‘정치검찰’의 오명을 쓰기도 했다.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당시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의 뇌물 고리를 계좌추적으로 확인하고도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수부 폐지론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수사가 신뢰를 잃을 때마다 제기된 단골메뉴였다.

1999년 박상천(朴相千) 법무부 장관 재직당시 검찰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공직비리수사처의 신설이 논의됐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가 터졌을 때는 법무부가 중수부 축소 및 특별수사검찰청(특검청) 신설안을 내놓았다.

▽전망=청와대와 법무부는 일단 ‘중수부 폐지’는 공론화된 적이 없고 무리하게 추진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중수부에 대한 견제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노 대통령이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이다. 공비처가 설치되면 검찰은 사정수사를 사실상 독점해 온 지위를 잃게 된다. 여권은 이제 “검찰(고위간부)도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기업인 처벌이 미약했던 점 등을 들어 공비처에 기소권까지 줘야 한다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검 중수부의 운명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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