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택시]<上>업계 공멸하나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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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가 위기에 처했다. 불경기로 인한 승객 감소에다 유가 인상, 대리운전의 성업, 기사 구인난 등 악재까지 겹쳤다. 16일에는 민주노총 산하 민주택시연맹에 속한 전국 180여개 업체 노조가 파업을 벌일 예정. 택시업계의 현 상황은 어떤지,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싣는다.》

13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빈 택시가 신세계백화점 앞부터 택시 정류장까지 50여대나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택시회사 차고지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비슷한 시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앞도 같은 풍경이었다. 택시운전사 김모씨(46)는 “손님도 없는데 다녀봐야 연료만 낭비한다”며 “한두 시간씩 기다리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뻗치고(기다리고)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택시업계에 공멸의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항상 어렵다고 말해 왔지만 올해는 사정이 정말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택시 가동률은 60%로 역대 최저 수준. 10대 중 4대의 택시는 차고에서 그냥 놀고 있다. 택시업계의 비수기인 여름이 닥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기 돈 채워가며 운행=택시 운전만 17년 했다는 최모씨(46·서울 중랑구 망우동)는 사정이 얼마나 어렵냐고 묻자 대답 대신 5월 수입금 일지를 불쑥 내밀었다.

하루 수입이 ‘오후반(오후근무)’인 날은 잘되면 10만원, ‘오전반’인 날은 평균 6만원 정도였다.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 8만5000원을 채우기가 어려울 정도다.

현재 택시 수입금은 전액 회사에 납부한 뒤 기본급에 수익금을 더해 월급을 받는 전액관리제를 하게 돼 있지만 사납금제를 유지하는 회사가 아직 많다.

최씨의 경우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월급이 깎일 때가 많다. 그렇게 해서 최씨가 5월에 번 돈은 80만원이 조금 넘는다.

사납금을 채우려고 밥 사먹을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빵과 우유로 식사를 때우거나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운전사들도 많아졌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택시운전사의 평균 임금은 113만원. 상황이 더 나빠진 지금은 대폭 떨어져 90만∼100만원 수준이다.

최씨는 “실직자, 신용불량자,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택시회사”라고 말했다.

▽운전사 구하기 전쟁=수입이 좋지 못하다 보니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서울의 경우 1999년 이래 매년 4000∼5000명 택시운전사 수가 줄었다.

서울 양천구의 택시회사 김모 사장은 “운전사가 40명가량 모자라 반 이상의 차들이 놀고 있지만 세금과 보험료는 그대로고 유가는 올라 대당 30만원 정도의 손해를 보고 있다”며 “임대료도 못내 빚을 얻는 사장들도 있다”고 말했다.

택시면허 시험을 실시하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교통회관은 면허를 취득한 운전사들에 대한 교육이 있는 매주 월∼수요일이면 업체 관계자들이 나와 ‘운전사 구하기 전쟁’을 치른다.

서울 금천구에서 택시회사를 경영하는 김모씨는 “어렵게 운전사를 구하더라도 수입이 나쁘고 힘이 들어 며칠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과의 경쟁=택시업계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경기가 좋지 못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하철의 심야운행과 대리운전 업체의 증가 등 대체 수단이 많아진 것도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리운전 업체는 전국에 7000여개. 서울 전역은 보통 2만원 안쪽이면 갈 수 있고 최저 1만4000원까지 받는 업체도 있다.

경남 창원시의 택시운전사 정근주씨(42)는 “창원에서 마산까지 심야에는 택시요금이 1만원을 훨씬 넘지만 대리운전은 8000∼1만원만 받고 있어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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