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대학의 길, 정치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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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7명의 대학 총장이 여당의 선거대책위원장과 선대위원을 맡아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과 권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대의 총장은 대학의 추천을 받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케 되어 있어 여당의 압력에 약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립대의 총장까지 이에 합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학 교수들이 상당수 출마해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이 비등한 때에 총장들의 행동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야기해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기에 족하다.

▼대학총장 흔들리는 정치 중립▼

대학이란 어떠한 곳인가.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은 특별히 교육의 자주성,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나아가 교육기본법은 ‘교육은 어떠한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법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총장이나 교수의 사회봉사 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도 전문지식과 창조력을 발휘해 국가와 사회, 인류에 봉사해야 한다. 교수나 총장의 정치활동은 그들의 출세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국가와 민족, 인류를 위한 봉사의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다. 대학은 기성의 질서나 권위에 대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견지함으로써 국가 사회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비판자로서의 정치 참여나 사회 참여는 바람직하나 과거와 같이 권위주의 정부에 빌붙어 독재나 불의를 옹호하는 참여를 해서는 안 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대에는 알 만한 학자를 ‘징용’해 정당성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많은 학자들을 동원해 혹은 장관으로, 혹은 국회의원으로 등용하고는 실질적인 권한은 부여하지 않고 정당성의 보완을 꾀하기만 했다. 많은 유능한 학자들이 일회용으로 이용돼 학자로서의 명망을 상실하고 어용학자로서의 오명만 남겼다. 물론 교수나 총장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수는 있을 것이나 단순히 정권 미화를 위한 차명(借名) 행위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교수나 총장은 출세의 길이 아니다. 출세와 치부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빨리 학계를 떠나 대학의 타락을 막아 주어야 한다. 본인의 영달을 위해 정당에 가입하고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경우에도 휴직 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회의원이나 장관과 같이 오랫동안 학교를 비우는 경우에는 일단 퇴직하고 대학의 요청에 따라 복직해야만 한다.

최근에는 교수들도 연판장을 만들어 세를 과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교수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판사가 국가기관이라고 한다면 교수도 독립적 헌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과 권위에 따라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를 선도해야지 수를 내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교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던 교수가 특정정당의 후보자로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것을 볼 때 국민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대학 자율성 훼손해선 안돼▼

정부나 정당은 교수나 총장의 이름이 그들의 활동을 위해 별반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그들의 이름을 무더기로 빌려 이용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정부나 정당이 헌법상의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지 않고 총장이나 교수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학문 발전에 유해한 일임을 자각해 이러한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총장이나 교수도 정당에 가입해 당당히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몰라도 제자와 동료에게 창피한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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