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동아에 바란다]현실주의 입각 균형감 되찾았으면

  • 입력 2004년 3월 31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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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창간 84주년을 맞이했다.

묵은 것보다 새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해 전통이 가벼운 한국 사회의 일반적 풍토에 견주어 볼 때, 한국현대사의 격동 속에서도 이만한 전통을 쌓은 언론을 한국 사회가 보유하게 된 것은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두터운 전통에 단순하고 따뜻한 축하를 보내는 일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착잡함은 무엇 때문인가. 내 학창시절 동아일보는 최고의 신문이었다. 더욱이 시민적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기발하기조차 한 방법들을 통해 독재정권들의 언론탄압에 저항한 동아일보의 양심적 고투를 시민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옹호했던 것이다.

오늘날 동아일보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틈에 동아일보는 보수로 분류되어 오랜 독자들마저 구독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익숙한 신문을 끊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해도 아침에 신문을 펼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독자들에게 종이 신문은 일종의 마약(?)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고 동아일보가 진보로 방향을 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냉철하고도 따뜻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왜 냉철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쟁점들이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을 통해 대안이 만들어지는 대화의 합리성보다 주장들만 일방 통행하는 운동의 휘발성(揮發性)에 경사되어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독해하면서 신문을 생산적 토론을 위한 공론장(公論場)으로 들어올리는 냉철함이 지금보다 더 요구되는 때는 없다.

왜 따뜻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진통이란 크게 보면 한반도 전체에 긍(亘)하는 새 나라 건설의 과정일 터인데, 주변 4강의 이해가 착종하는 한반도에서 분단체제 극복의 평화적 연착륙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담한 상상력으로 개혁의 중지(衆智)를 모으는 대통합이 필수다. 따뜻한 열정이야말로 이 민족적 대사업을 추진하는 바로 불굴의 바탕이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3·1운동(1919년)을 모태로 태어났다. 3·1운동으로 점화된 이상주의의 물결 속에서 민족의 표현기관을 일구어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현실주의를 거울로 삼아 동아일보가 대국적 균형감각 속에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으로 창간 축하를 대신하고자 한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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