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호/평준화 탓만 할 것인가

  • 입력 2004년 1월 29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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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그것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뭇매에 못 이겨서 벌써 자살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가장 많은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고교 평준화 정책이었다. 그렇기에 교육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취임 일성으로 발표하는 정책소견에서 빠지지 않는 항목 가운데 하나가 평준화에 대한 보완이었다.

▼'서울大 입학생 분석' 계기 또 논란 ▼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팀이 서울대 사회대 9개 학과 입학생의 학생카드 기재사항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자 평준화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출신 수험생의 입학률이 평준화 이전에 비해 높아졌고 또 고학력 고소득 가정 자녀들의 입학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평준화 정책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연구원 연구팀의 연구는 고교 평준화 정책의 폐해를 집중 분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 그 연구는 비록 서울대가 한국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모든 대학이 영향을 받는 대학입학제도나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본다.

문제는 그러한 경험과학적 연구 결과를 겸허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확대해석해 평준화 정책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에 대해 다시금 비난을 가하고 달구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번 사회과학연구원 연구팀의 연구는 매우 가치 있는 분석임에 틀림없다. 고교 평준화나 대학입학제도에 관한 경험과학적인 연구가 그동안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다면적인 인구학적 자료들을 30년 넘게 누적시켜 비교분석한 경우는 없었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개 대학, 그것도 불과 한 단과대학 학생들의 자료를 분석한 것인데 그것을 해석하고 활용함에 있어 한국교육 전체의 본질적인 문제인 고교 평준화와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그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임 교육부총리도 그것을 보완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고교 평준화 정책은 엄격히 말하면 고교 입학생들을 무작위로 배정해 입학시킴으로써 고교간의 입학생 수준차를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평준화 정책은 이를 입안할 당시 한국의 교육적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고교 입학생의 평준화가 결국 교육의 질에서의 평준화, 그것도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완대책이 그때마다 구두선에 그쳤고, 그러는 가운데 평준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폐해를 낳고 또 그만큼 고착돼 버렸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교육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 원초적 책임을 모두 평준화 정책에다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교육 전반 문제점 함께 따져야 ▼

이제 평준화 정책은 그것을 그냥 폐기시킨다고 해서 그동안 쌓인 모든 문제를 한순간에 해소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많은 부문과 내적·외적인 관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교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교사의 자질과 수업 수준, 대학입학시험 제도와 대학의 입학생 선발권 자율화,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 및 실업계 고교의 육성, 도시와 지방의 교육격차 해소 등의 문제와 유기적인 관계 아래서 평준화 문제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단순히 평준화 정책의 존폐를 놓고 이원론적인 선택과 결정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성호 연세대 부총장·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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