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기/'방폐장 혼란' 반복할 셈인가

  • 입력 2003년 12월 1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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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 원전수거물관리시설(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지으려던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취했던 조치들을 보면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부안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방폐장 건립을 밀어붙여 왔다. 이 때문에 방폐장 건립을 둘러싼 정부와 부안 주민간의 마찰은 극한 대립으로 격화됐다. 정부가 방폐장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부안군은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되찾을지 모르지만, 방폐장 건립을 둘러싼 찬반 대립과 상호불신으로 인해 빚어진 주민간, 정부와 주민간의 갈등과 상처는 오랫동안 남을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방폐장을 건립하기 위해서 정부가 동원했던 막대한 행정력은 물거품이 됐고, 정부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져 정부가 앞으로 추진할 다른 국책사업에도 큰 부담을 초래하게 됐다.

▼섣부른 양면전술 불신만 키워 ▼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은 정부의 무능에 있다. 이미 굴업도와 안면도에 방폐장을 설립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분쟁을 해결할 합리적인 방안을 만드는 데에 소홀했다. 주민의견 수렴작업을 소홀히 했고, 방폐장 건립을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반대에 부닥치자 무마하려고 했다가 이것마저 실패하자 그때서야 대화에 나서는 잘못을 반복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주민을 무마하기 위해 섣부른 양면 전술을 썼다가 주민의 불신만 가중시켰다. 한편으로는 비상사태를 방불케 할 정도의 경찰력을 투입해 주민의 반대를 잠재우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을 달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보상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식이면, 만에 하나 부안 방폐장 건립이 성공하더라도 원칙을 잃어버린 보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시한 방폐장 분쟁 수습방안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부안에서 방폐장 건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부결될 경우에 대비해 부안 이외의 지역에서도 유치신청을 받겠다는 것이지만, 현재의 상황이라면 부결이 뻔한데 왜 뒤늦게 찬반투표를 하려는지 의문이다. 투표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한다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자신의 논리를 당당하게 펴고 주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면 갈기갈기 찢어진 주민의 마음을 오히려 아프게 할 수 있다.

또 정부는 방폐장 유치를 새로 신청할 지자체는 주민 50%의 청원, 단체장의 예비신청, 찬반토론, 주민투표 등의 절차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절차는 방폐장 건립이 국책사업이라는 정부의 다짐과 배치된다. 부안사태에 놀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계획대로라면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방폐장 설치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밟는 것 이상의 문제이다. 안정성 문제가 핵심이며 이것은 중립적인 전문가들의 기술 평가와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쟁 수습방안도 허점투성이 ▼

정부는 부안에 과도한 보상과 지원을 제공하려고 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새로 유치 신청을 받을 때는 지원금을 적게 써낼수록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방식대로라면 방폐장을 건립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방폐장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지원금이 적으면 주민의 청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단체장이 방폐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인센티브도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방폐장 건립에 따른 경제적 영향 분석의 결과일 것이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에는 방폐장 건립 후보지를 최종확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섣불리 시한을 정해 서둘다 보면 제2의 부안사태가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원점 재검토’의 전제는 부안에서 있었던 정책적 문제점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신속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재유치 신청 등의 절차에 들어가는 게 순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분쟁해결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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