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만 걸려도 이병원 저병원 …‘의료쇼핑 중독’ 9만여명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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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질병에도 하루나 이틀 사이에 3, 4곳의 병원을 찾는 이른바 ‘의료쇼핑족(族)’이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동일한 질환으로 5일 이내에 3차례 이상 서로 다른 동급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의료쇼핑족’이 9만645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2001년에는 감기로 하루 7곳의 병원을 찾은 환자도 있다.》

물론 병세가 쉽게 호전되지 않거나, 어린 자녀들이 질병에 걸린 경우 불가피하게 병원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어 ‘의료쇼핑’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미한 증세에도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과, 정확한 진단과 설명보다는 환자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진료를 부추기는 병원과 의사가 적지 않아 무분별한 중복진료와 건강보험료 낭비를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본보 취재팀은 감기 환자 두 명이 각각 하루 두 곳의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을 동행 취재하면서 ‘의료쇼핑’ 실태를 살펴봤다.

▽무조건 “다시 진료 받으라”=목이 따끔거리고 미열이 있는 감기환자 박모씨(56·여·서울 구로구 신도림동)는 25일 오전 동네 내과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이 조금 부었네요. 평범한 감기니까 푹 쉬고 집에 가습기 틀어놓으세요”라고 조언한 뒤 주사를 한 대 놓아주었다. 박씨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이틀치 약도 지었다.

박씨는 30분 뒤 영등포구의 또 다른 내과병원을 찾았다. 그는 의사에게 “조금 전 다른 병원에서는 ‘평범한 감기’라고 하던데 일주일째 감기가 안 떨어져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웃는 표정으로 “잘 오셨어요. 감기는 초기에 잡아야죠”라며 조금 전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는지, 어떤 처방전을 받았는지도 묻지 않고 그냥 “주사 한 대 맞고 가라”고만 했다.

감기환자 이모씨(28·서울 강동구 명일동)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4일 오전 마포구의 한 내과에서 주사를 맞은 이씨는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 “계속 목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병원 의사도 이씨가 직전 병원에서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처방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고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이에 이씨가 “오전에 맞았는데”라며 주저하자 의사는 “괜찮으니 주사 한 대 더 맞고 가라”고 말했다.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은 이씨는 간호사로부터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병원문을 나섰다.

▽의료쇼핑 실태와 원인=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중복진료 환자는 감기환자(30%)와 피부질환자(16.2%)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4만명에 가까운 감기, 피부질환자가 5일 이내에 세 곳 이상의 병원을 전전한 것.

환자들이 의료쇼핑에 빠지는 것은 ‘잘못하면 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특히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지 않을 경우 중복진료로 이어진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달 4회 이상 중복진료자 30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문 상담 결과 58.4%(1770명)가 ‘병세가 속히 호전되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심리를 악용하는 병원과 의사들이다.

동행 취재에 응한 박씨도 “나이가 드니 작은 병에 대해서도 불안해진다”며 “그러나 어느 한 병원이라도 증세를 잘 설명해주면 불안감이 좀 덜할 텐데 무조건 주사만 맞고 가라고 하니 자연히 다른 병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趙慶愛) 대표는 “치료보다 환자를 받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일부 의사들 때문에 중복진료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라며 “의사들의 윤리의식이 바로 서지 않는 한 불필요한 진료와 이로 인한 건강보험료 낭비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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