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달리는 勞-政]<上>勞"손배남용 억제등 약속지켜라"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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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129일간의 고공 크레인 농성을 자살로 마감한 지난달 17일.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노사, 노-정 관계에 큰 악재(惡材)로 작용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그의 육감은 불행히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 노조 간부들의 자살, 분신이 잇따랐으며 노동계는 손해배상 및 가압류제도의 개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면서 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더 이상 노동계에 밀릴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서 노-정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노동계 강경투쟁 배경=도화선이 된 것은 노조 간부들의 잇단 자살과 분신. 노동계는 사용자가 툭하면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재산을 가압류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근본적인 방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간부의 분신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도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출범 초기 ‘친노(親勞)’ 성향을 보였던 정부가 6월 말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경찰력을 투입한 이후 강경으로 선회, 노동계의 배신감이 높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9월 30일 민주노총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하며 민주노총에 대한 각별한 친근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달 10일에는 전날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의 화염병 시위와 관련해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위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할 만큼 했는데도 사사건건 반대만을 일삼는 노동단체가 서운하다는 감정이 묻어난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대통령을 ‘아내를 사랑한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 남편’에 비유하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대통령이 표시한 애정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일부에서는 내년 1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거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내부의 여러 파벌이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행동이 점차 과격해지고 있다”며 “9일의 화염병 시위도 일부 강경파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년 내내 ‘투쟁’=개별 사업장의 임금 및 단체교섭이 마무리되는 11월경 노동단체들은 ‘하반기 투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1년간의 성과를 정리하는 성격이 강해 ‘투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적절치 않은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두산중공업의 장기 파업을 시작으로 한 ‘춘투(春鬪)’에서 여름과 가을을 거쳐 ‘동투’에 이르기까지 분규와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발생한 파업 건수는 10일 현재 305건.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3건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1년 내내 불안한 노-정, 노사 관계가 계속되는 것은 활동무대를 정치적 영역으로 넓히려는 노동단체 외에 정부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파업 관련 구속 자제, 손해배상 가압류 남용 억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노동계의 입맛에 맞는 약속을 남발해 놓고 추진속도가 노동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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