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시민 축제의 공간으로

  • 입력 2003년 10월 26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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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4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지하철5호선 까치산역.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지하1층 대합실 한편에서 친근한 멜로디의 색소폰 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그 앞에 모여 앉아 흥겨움에 취한 시민들. 회색 콘크리트의 지하철 역사(驛舍)에서 작은 '열린 음악회'가 펼쳐지고 있었다.

공연을 보던 채은주씨(30·여)는 "지하철역에서 이런 공연도 하는 줄은 몰랐다"며 "열차를 기다리는 장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니 신선하다"고 말했다.

출퇴근길 비좁은 찻간과 밋밋한 공간으로만 기억되던 서울의 지하철이 여러 문화 행사를 마련하는 등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얼음축제와 색소폰연주, 국악공연과 전시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 한마당=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93개 지하철역에서는 30일까지 '도시철도 가을 문화축제'가 열린다.

1995년 11월 5호선 천호역에서 열렸던 5호선 강동 구간의 지하철 개통을 축하하는 합창단 공연이 지하철 축제의 시초.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2000년 10월 시민의 날을 전후해 매년 지하철 축제를 열리면서부터다.

올해 축제의 특징은 시민들이 참가해 함께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가 많아졌다는 점.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보거나 재즈 전문가에게 연주를 배워보는 시간 등이 눈에 띈다.

5호선 까치산역의 역무원 최혁진씨(31)는 "예전엔 공연 땜에 불편하다는 시민들도 많았다"면서 "요즘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 지하철역이 동네 주민들을 위한 모임장소처럼 바뀌었다"며 웃었다.

▽수준 높은 공연으로 눈길을 끈다=2000년 4월에 시작한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의 '지하철예술무대'는 "일상 속에 살아 숨쉬는 수준 높은 예술무대"를 표방한다.

8월 강남역과 시청역 등에서 있었던 뉴욕 지하철 예술인의 내한공연, 27~30일 사당역 등에서 열리는 에콰도르 밴드 '시쎄이'의 전통잉카음악연주 등 돈 주고도 쉽게 볼 수 없는 공연들이 무료로 열린다.

매주 수요일 동대문운동장역에서 공연을 가지는 재즈피아니스트 이건민씨(27)는 "외국 연주가들도 대중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하철역의 열린 무대에서 자주 선다"면서 "다양한 연령층에게 재즈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서울지하철공사 주시환(朱時煥) 홍보실장은 "아직도 바쁜 일상에 쫓겨 쉽게 공연장이나 전시회 등을 찾기 힘든 이들이 많다"면서 "지하철역이 가벼운 맘으로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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