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진짜 특목고’ 따로 있는데…

  • 입력 2003년 10월 9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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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니 재정경제부 장관이 특수목적고(특목고)를 세워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특목고가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경북 지역의 한 농업계 고교 교장은 “‘특목고’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달 중순부터 시작되는 특목고 입시를 앞두고 중학생들이 학원에서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일부 학부모들은 초등학생 자녀에게까지 특목고를 겨냥한 과외를 한다는 ‘특목고 열풍’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특수목적고교)’(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는 당초 기계 전자 농업 수산 등 이른바 실업계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재 전국 16개 시도에 모두 115개 특목고가 있다. 특목고는 공업 농업 수산 해양 과학 외국어 예술 체육 국제 등 9가지 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특목고=외국어고 또는 과학고’이며 ‘특목고=명문대 진학’이란 이상한 등식이 일반인들의 뇌리에 박힌 것처럼 보인다.

“농업고 공업고 해양수산고는 겨우 목숨만 지탱하고 있는데 90년대 들어 생긴 과학고 외국어고는 명문고 진학을 위한 특수목적 때문에 열풍이 불 정도로 주목받으니 비참한 심정입니다.”

특목고 열풍이 불 때마다 ‘진짜 특수목적’을 지니고 설립된 실업계 고교에서 30년 넘게 수산업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이렇게 푸념하곤 한다.

과학계 외국어계 특목고는 입학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농업계 수산계 공업계 특목고는 줄만 서면 입학할 정도인데 줄 서는 학생마저 없다. 이들 특목고의 학급당 학생수는 10∼20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런 특목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학비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또 동일계 대학에 진학할 때는 가산점 등 혜택이 주어진다.

과학고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가 많이 세워지고 이들 학교가 원래 특수목적에 맞게 운영된다면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많은 실업계 특목고가 학생 모집난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에 진정한 교육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실업계 특목고에 입학하면 많은 혜택이 있다고 말해도 학부모들이 믿질 않아요. 학생은 오지 않는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마련한 실습 장비를 쳐다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진정한 특목고는 고사하도록 방치해 두고 시류에 편성한 특목고 설립만 외치고 있으니….” 또 다른 특목고 교사들의 절규다.

이권효 사회1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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