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험 잘보려면"야밤연습 …예체능교육 점수따기 전락

  • 입력 2003년 10월 8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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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중 1학년생 이모군(13)은 2학기 중간고사에 대비하느라 지난달 미술학원에서 추상화 그리기를 배웠고 체육학원에서 탁구를 익혀야 했다.

이군은 “지난 학기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설명도 거의 하지 않고 데생과 크로키를 하라고 한 뒤 점수를 매겨 너무 당황했다”면서 “학원에 다닌 친구들에 비해 너무 낮은 점수를 받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군이 한달간 이들 학원에 다니느라 지출한 비용은 11만원가량.

이군 어머니 김모씨(45)는 “학교에서 하는 예체능 실기시험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경우를 보면서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 일로 닥치니 어쩔 수 없더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자녀의 예체능 실기고사가 다가오면 학부모와 학생은 몸살을 앓는다. 부모들은 빠듯한 살림살이에 돈을 마련해 자녀를 학원으로 보내거나 밤늦게까지 직접 ‘과외’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학부모 김모씨(39·여·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중학생 딸의 체육시험 때문에 자정이 넘도록 학교 운동장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했다”면서 “시험 준비를 하는 아이와 부모들로 운동장이 붐벼 서로 부딪칠 정도”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이상 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5월 예체능 과목 평가방식 개선시안을 발표했지만 교육 현장은 아직까지 변화의 기미가 없다.

예체능 평가 방식을 ‘수우미양가’라는 평어 방식에서 전체 과목 점수에는 포함되지 않는 서술식이나 합격 또는 불합격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 교육계가 논란을 벌이는 사이에 학생과 학부모의 ‘고행’은 계속되고 있다.

학교에서 예체능 과목을 형식적으로 지도하고 기능 위주로 평가해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어 즐거워야할 예체능 과목에서 자녀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서울 D중 3학년생 김모군(15)은 “체육선생님이 배구 서브 방법을 한 번 가르쳐 준 뒤 시험을 보겠다고 해 주말에 따로 과외를 받았다”면서 “시험 보려고 학교에 가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S체육학원 신모 강사(26)는 “평소에는 레포츠 수업을 하고 시험 한 달 전에는 실기평가를 위한 지도를 하는데 중학생 수강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00년 12월 전국 초중고교생 2만2584명을 대상으로 사교육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학생의 12.2%, 고등학생의 7.4%가 예체능 관련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예체능 교사들은 주관성이 다소 개입될 수밖에 없는 예체능 과목 평가에 대해 학부모가 공정성을 지나치게 요구해 교사들이 ‘드리블 몇 회’ 하는 식으로 기능적인 평가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전국음악교과모임 홍준표 회장(38·서울 경인중 교사)은 “기능 중심인 현행 교육과정을 바꾸지 않고 평가방식만 바꾸겠다는 것은 단편적인 발상”이라며 “예체능 과목 성적을 내신에서 제외한다면 예체능 교육은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김정명신(金鄭明信) 대표는 “평가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사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점수가 아닌 문화 예술적 소양을 위해 예체능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교사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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