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곤/尹부총리 물러나시오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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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공방 끝에 마침내 윤덕홍 교육부총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고3년생은 올 한 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시행하고 고2 이하는 NEIS 이전 체제를 시행하되 올해 말까지 검토해 결론을 내겠다”고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본 교육청 장학사, 일선 학교 정보화 담당교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 교육부의 정보화 관계 실무자들, 심지어는 전교조 소속 정보화 교사까지도 한결같이 “그렇게는 못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설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누구도 앞에 나서서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대란 부른 ‘정치적 결단’▼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입술이 마르고 애가 탄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결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인권문제도 있고… 이미 합의한 내용을 뒤집어 버리면 전교조가 가만히 있겠는가. 교육계가 더 큰 혼란에 빠질 텐데….’

그러나 학교 현장의 사정을 들어볼수록 현장의 주장은 충분히 이유 있는 항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고2는 7차 교육과정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 체제로는 자료조차 입력할 수 없다. 그리고 2년 동안의 숱한 시행착오와 고난을 극복하면서 이제 막 NEIS가 정착단계에 들어서고 있는데 이것을 다시 과거로 되돌리자고 교사들을 설득할 명분도, 힘도 없다는 것이다.

“전교조 간부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던데요?”(필자) “한 마디로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특정 학교만 보면 그럴지 몰라도, 학교에 따라 사정이 모두 다르고, 전국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교육청 장학사) “학생들의 인권문제는?”(필자) “CS는 보안이 거의 되지 않습니다. NEIS의 보안은 은행 수준입니다. 인권위가 제기하는 문제는 여러 학교의 자료를 한 군데 모아놓았다는 것뿐인데 은행은 NEIS 못지않게 많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한데 모아놓고 있습니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등의 일반 행정기관은 인권을 무시하는 것입니까?”(정보화 담당교사)

이런 설명을 들으며 전교조 간부들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윤 부총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더욱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취임 이래 NEIS에 대해 수없이 ‘폐기’와 ‘존속’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최근에는 국회에서까지도 NEIS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학교 현장이 이렇게까지 혼란에 빠지게 될 줄 미처 예측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동안 자신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해온 부하직원과 교사들이 느낄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허탈감 및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입시와 전학 등으로 겪게 될 고통 등에 대해 잘 알면서도, 현 정권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전교조와 정치가들에게 잘 보여 부총리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그러한 ‘정치적 결단’을 내렸는가?

어느 경우든 부총리는 물러나야만 한다. 그는 최근 다시 전교조와의 합의를 번복해 자신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교육부 업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무소신과 무원칙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다. 부하직원들에게서도 믿음과 존경심을 잃어버려 더 이상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다.

▼무소신-무원칙으로 令 안선다 ▼

대통령은 하루라도 빨리 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과 소신을 가진 새로운 교육부총리를 임명해야 한다. 전교조 간부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더 이상 이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교육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 교육계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농촌에는 학생을 가르쳐줄 선생님들이 없고 학교는 붕괴되고 있다. 청년실업자가 넘쳐나지만 기업들은 쓸 만한 인재가 없어 아우성이다. 교육의 앞날이 국가의 앞날을 좌우한다. 정부도, 전교조도 이제는 ‘정치적 결단’이 아닌 ‘교육적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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