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총련 대법 판결 의미 잘 새겨야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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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이적성을 다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현 정부 들어 야기된 대표적인 법적 혼선 하나를 정리해 주었다. 최근 한총련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매듭짓는 일종의 사법적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중대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향후 한총련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만큼 한총련이나 정부의 선택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우선 출범 10주년을 맞는 이달 말을 전후해 발전적 해체와 새로운 학생운동단체 발족에 나설 예정인 한총련이 합법성을 보장받기 위해선 근본적인 탈바꿈 외에 달리 길이 없다. 북한의 통일노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법원이 판단한 기본노선은 달라지지 않은 채 일부 강령을 유연하게 바꾸는 정도의 전술적 조치만으로는 이적단체로 볼 수밖에 없다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한총련은 잘 새겨야 한다.

한총련 문제에 관한 법적 혼선을 유발한 주된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그 의미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개폐 논의의 당위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실정법에 따라 법원이 계속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등이 한총련 관련자들에 대한 수배 해제를 거론한 것부터가 국민의 법의식을 혼란케 했다.

또한 얼마 전 단행된 특별 사면 복권에 한총련 관련자들을 다수 포함시킨 것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정부 청사에서 공공연히 수배자 신분인 한총련 의장을 만난 것은 법치의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니 한총련 의장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심지어 한총련 출범식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하겠다고 나서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는가.

이처럼 법과 정부가 동시에 무시당하는 사태는 정부가 자초했다. 국가보안법이 개폐되거나 한총련이 진정 새롭게 변신하지 않는 한 수배자 검거와 사법처리는 정부의 기본적인 의무인데도 이를 망각하거나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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