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컨설팅 동아리 "동아리 활동이 취업준비죠"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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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올리기 지금부터” 한양대 컨설팅 동아리 ‘HESA’의 회원들이 기업분석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며 토론을 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몸값 올리기 지금부터” 한양대 컨설팅 동아리 ‘HESA’의 회원들이 기업분석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며 토론을 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한국에서 1년 동안 팔리는 바퀴벌레 약은 몇 개일까요?”

올해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휴먼컨설팅그룹의 사무실. 입사 면접을 보러 들어간 김광우씨(28)에게 뜬금없는 질문이 던져졌다.

잠시 동안의 침묵. 김씨는 입을 열었다.

“음… 우선 바퀴벌레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구수와 바퀴벌레약 사용 가구의 비율을 가정하겠습니다. 인구 4000만명에 4명당 1가구로 계산하면 1000가구가 되는군요. 그런 다음에는 바퀴벌레 약의 사용 기간과 분무량, 횟수를 따지고…(중략).”

약간의 진땀을 흘리기는 했지만 김씨는 무사히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뉴욕 맨홀의 뚜껑이 몇 개나 되는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비슷한 논리로 완결된 답변을 만들어냈다.

컨설턴트 채용 면접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치밀한 논리력과 분석력. 김씨가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닐 당시 컨설팅 동아리 FES(Future Enterpreneurs’ Society)에서 활동한 경험 덕분.

이 같은 대학교의 동아리 활동이 최근 취업난 속에서 공부와 취업 준비를 병행할 수 있는 미래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로 금융과 컨설팅 분야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아리 창설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전 경험을 통해 몸값을 높인다=FES에서 활동하는 회원 30여명은 1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특정 주제를 놓고 세미나를 연다. 외국회사의 경영 사례집을 연구하거나 컨설팅 회사에서 나온 각종 기업분석 자료를 검토한다.

로레알, AT커니 등 컨설팅사가 기업에서 진행하는 각종 기업사례 연구 대회에 참가해 실전 경험을 쌓는 것은 필수.

김광우씨는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익힌 것은 물론 취업정보를 나눌 수 있어 직장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에는 서울대투자연구회, N-CEO, MCSA, IFS 등 경영대에만 4개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투자연구회는 투자 대상인 기업 분석과 비즈니스 모델 등을 연구하는 모임. 이와 함께 250만원 정도를 실제 주식시장에서 굴린다. 20여명의 회원 중에서는 경영학과 학생보다는 공대와 인문대 학생들의 비중이 더 높은 편.

컨설팅 동아리인 MCSA는 외부 기관의 요청을 받고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해 2000년과 2001년 모두 1700여만원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이 밖에 연세대의 컨설팅 동아리 GMT와 MARP, 한양대의 HESA, 서강대의 LENS 등 상당수 대학에서 유사한 동아리 활동이 진행 중이다. 경희대에서도 작년 12월 ‘제리컨설팅’이라는 동아리가 새로 생겼다.

▽기업은 준비된 인력에 손을 내민다=이런 활동을 통해 실무 능력을 쌓은 인력들은 금융, 컨설팅 업계에서도 환영받는다. 특히 투자대회나 기업사례 분석대회 수상 경력이 있으면 상당한 가산점이 붙는다.

서울대투자연구회에는 최근 한 투자자문회사로부터 “인재를 찾고 있으니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활동멤버들은 모두 신용평가 회사나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에 어렵지 않게 취직했다.

동아리 선배들과의 네트워크 역시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동아리 출신들은 이미 80% 이상 여의도 금융가 등에 진출해 있는 상태. 컨설팅 업계에서도 상시채용인 데다 내부 추천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휴먼 네트워크는 무시하기 어려운 힘이다.

아예 창업에 나선 경우도 있다. 서울대투자연구회 출신의 최준철씨(28)는 최근 밸류코퍼레이션이라는 투자회사를 만들었다. ‘머니스카우트’라는 금융권 전문 취업포털도 최근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학투자저널’의 발행인이기도 한 최씨는 최근 10여군데 증권사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지만 자기사업을 위해 모두 거절한 상태.

최씨는 “인지도가 있는 경영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기업들에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초보는 아니구나’라는 믿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현 휴먼컨설팅그룹 대표는 “무작정 토익 점수만 올리고 입사원서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무적인 분야에서 구체적인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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