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새 의장단 '발전적 해체' 전망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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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로 구성된 11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단이 합법화를 위한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를 언급함으로써 학생운동의 노선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총련 지도부는 이적단체로 ‘낙인’이 찍힌 현재의 한총련 간판을 내리고 다른 진영의 학생단체를 포괄하는 ‘대중적’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총련을 새 조직으로 바꾸기에는 거쳐야 할 절차가 복잡다난한 데다 발전적 해체에 반대하는 내부 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아 갈등은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바뀐 지도부=이번 선거는 한총련 주체사상파의 양대축인 ‘혁신’과 ‘자주’계열의 대결이었다. 자주계열은 반(反)외세 자주통일 투쟁을 내세우며 그동안 한총련을 이끌어왔다. 반면 혁신계열은 사회 내부의 모순 해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노선을 내세워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총련의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도 혁신계는 ‘스스로의 혁신을 통한 합법화’를, 자주계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통한 ‘투쟁적 돌파’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일단 이번 선거에서 대의원들이 혁신계를 지지함으로써 노선변화는 시동이 걸린 셈. 새 지도부는 “그동안의 주류였던 ‘자주’계열 후보를 물리친 것은 대의원들이 노선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핵심 요직인 대변인과 학원자주화추진위원장, 조국통일위원장에 모두 혁신계가 선출된 것도 현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변하는 기류=지도부가 교체된 것은 그동안 한총련이 학생들에게서 외면당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총련이 벌인 일련의 강경투쟁도 ‘시대적 조류에 맞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자주계열인 서울산업대 홍기웅 부총학생회장(23·토목공4)은 “정치적 행사에 한총련이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한총련의 활동이 학내 복지문제 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한총련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최근 노선과 관련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중도개혁파와 온건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일부 학생들은 “미군철수, 전쟁반대, 통일운동을 벌이는 게 한국 대학생을 대표하는 단체의 주요 활동인가요?” “반대파를 숙청하고 양민들을 볼모로 삼는 김일성 부자 정권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과격투쟁에 회의론을 피력하고 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의장단은 새로운 한총련 조직을 만들기 위해 연구소위원회를 구성해 초안을 만든 뒤 이를 중앙상임위원회와 중앙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대의원 대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 중 각 대학 총학생회장이 참석하는 중앙위원회가 가장 큰 변수. 혁신계는 중앙위에서 활동 중인 60여명의 총학생회장 가운데 혁신계 지지가 절반 정도라고 보고 있지만 자주계열은 자주 43, 혁신 10 정도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번 선거에서 혁신계 지도부가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3표 차로 신승(辛勝)을 거두었던 점도 ‘새 노선’이 차기 대의원 대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남기는 대목이다.

자주계 강경파가 여전히 새 지도부와 상반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한총련 내부에서 가장 강경한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전남대 정달성 부총학생회장(24·과학교육학부4)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은 당시 정권의 잘못인데 우리가 ‘해체’를 먼저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한총련 학생운동을 예전보다 더 자신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라고 말했다.

자주계열의 핵심으로 대변인에 출마했다 낙선한 창원대 김선예 총학생회장(25·중국학4)은 “‘발전적 해체’라는 말에 대해서는 한총련 내부에서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없다. 공감대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노선 변화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한총련 5기 의장을 지낸 강위원씨(33)는 “많은 후배가 ‘무장해제(조직해체)’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한총련 약사▼

△93년 4월 전북대에서 제1기 한총련 창립대회

△97년 6월 대검 공안부, 한총련 이적단체 첫 규정

△98년 8월 대법원, 한총련 이적단체 인정 확정 판결

△2001년 4월 9기 한총련, 통일 강령 ‘연방제’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수정

△2002년 3월 한총련 합법화 범국민대책위 발족

△2003년 3월 청와대·법무부 “한총련 문제 전향적 검토”

△2003년 4월 11기 한총련 의장 “한총련 발전적 해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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