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SK서 2만달러 수뢰혐의]'KT지분 매입' 묵인 대가?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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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수사관들이 2월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SK글로벌 연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250여 박스 분량의 회계장부 등 압수물품을 트럭에 싣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지검 수사관들이 2월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SK글로벌 연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250여 박스 분량의 회계장부 등 압수물품을 트럭에 싣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남기(李南基)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이 전 위원장에게 돈이 전달됐는지, 그 명목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모아져 있다.

검찰은 “지난해 5∼8월 SK텔레콤의 KT지분 매입을 전후해 이 전 위원장에게 2만달러를 전달했다”는 SK그룹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9일 이 전 위원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하고 혐의 확인을 위해 관련자 계좌 추적을 통해 돈의 흐름을 쫓고 있는 것은 이 진술을 입증할 단서를 찾는 단계인 셈.

이 전 위원장이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시점은 SK텔레콤이 민영화된 KT의 지분 11.34%를 매입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SK텔레콤의 통신시장 독점 시비가 불거졌을 당시. 그래서 검찰은 대기업의 독점 규제 등을 전담함으로써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의 수장(首長)이던 그에게 SK측이 청탁과 함께 돈을 건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검찰은 이 전 위원장이 SK측에서 돈을 받고 SK텔레콤의 KT지분 매입과 관련된 업무 지시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을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계좌추적 영장에 그의 혐의를 ‘직권남용’으로 기재한 것이 바로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

이 전 위원장에 대한 혐의 단서는 SK그룹의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회계장부를 조사하던 중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SK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들에서 일정액의 자금을 거둬들인 뒤 이를 비자금으로 관리하면서 ‘로비가 필요한 곳’에 사용했고, 이 중 일부가 그에게 제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다른 고위 공직자 1, 2명에게도 SK의 비자금 1000여만원씩이 흘러 들어간 단서를 포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서 SK건설이 지난해 5월 자회사인 J사 명의로 경기 남양주시에 종합리조트 건설을 추진하면서 편의제공 청탁과 함께 자치단체 고위 간부 K씨에게 5000만원을 전달한 단서도 비자금의 흐름을 쫓는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그룹 구조본에서 어떻게 돈을 마련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비자금 추적 결과에 따라서는 다른 고위 공직자들의 수뢰 단서가 더 튀어나올 수도 있어 주목된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남기 前위원장은▼

SK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이남기(李南基·60)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개혁’과 ‘깨끗한 시장(Clean Market)’을 소리 높여 주장해 왔다.

그의 수뢰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개인적인 도덕성은 물론 공정위의 이미지에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사령탑’이 ‘재벌’의 돈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국장은 “이제 기업에 ‘공정’이란 말을 어떻게 꺼내느냐. 당장 상반기에 예정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할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법 집행과 본인의 위원장 자격 시비를 포함한 인사 난맥으로 공정위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는 행정고시 7회로 공직에 입문해 주로 공정위에서 근무했다. 그는 1986년 국내에서 공정거래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책도 여러 권 냈다.

이석채(李錫采) 전 정보통신부 장관, 한이헌(韓利憲)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기호(李起浩) 전 노동부 장관 등 쟁쟁한 행시 동기들의 그늘에 가려있던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전북 김제 출신인 그는 98년 8월 공정위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이어 2000년 8월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공정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권력의 시녀’로 추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남기 공정위’는 ‘비판언론’ 압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공정위는 국세청이 언론사 세무조사 방침을 발표한 지 2주일 만인 2001년 2월12일 당초 예정에 없던 13개 언론사와 계열사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조사를 시작했다. 이어 4월20일까지 유례 없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과징금 241억여원을 물렸다.

이 조사에서 공정위는 관행과 달리 부가가치세를 포함시켜 과징금을 부풀린 반면 DJ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사에 대해서는 조사를 축소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공정위는 언론사 조사 착수 나흘 만인 2월16일에는 DJ정부가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스스로 폐지한 신문고시(告示)를 부활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는 대기업그룹 부당내부거래조사를 기획한 사실이 밝혀져 ‘대기업 길들이기 시도’라는 의심을 받았다. 반면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 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계좌추적을 하지 않는 등 ‘정치적 의사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95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공정위 국장을 지낸 임영철(任英喆) 변호사는 ‘넥스트코리아: 대통령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라는 책에서 “공정위는 지키지도 못할 법과 규정을 만들어 애꿎은 사업자를 범법자로 만들고 그중 미운 놈만 골라 손을 본다”고 꼬집었다.

또 공정위의 한 공무원은 “이남기씨가 공정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인사에서 특정 지역과 특정 학교 출신을 지나치게 우대한다는 불만도 많았다”고 밝혔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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