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제이 로젠 美뉴욕大교수 인터뷰/정부와 언론

  • 입력 2003년 3월 31일 17시 55분


코멘트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미국 뉴욕대 제이 로젠 교수(왼쪽)가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뉴욕대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홍권희 뉴욕특파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미국 뉴욕대 제이 로젠 교수(왼쪽)가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뉴욕대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홍권희 뉴욕특파원과 대화하고 있다.

《창간 83주년을 맞아 본보는 창간정신을 되돌아보며 현 시대 언론의 사명을 다시 짚어본다. 미국 뉴욕대 제이 로젠 교수는 시민의 시각에서 보도하는 ‘퍼블릭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주창자다. 완연한 봄날씨였던 3월 말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뉴욕대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 언론의 역할과 미래의 미디어 환경에 관해 들어보았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현대사회에서 강조돼야 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제사회의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지고 있다. 또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를 감시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나라별로 역사 진행이 다르고 정치 시스템과 정치문화가 다르며 대중이 요구하는 바도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언론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9·11테러 이후, 특히 최근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미국 언론들이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도 나타나 언론의 불만을 사기도 하는데….

▼美정부 전쟁보도 통제 위험▼

“그 이유는 첫째, 테러와의 전쟁 및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미국 언론 스스로가 길들여져 자기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나 독자의 인기를 얻으려고 애국주의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둘째는 정부, 특히 백악관에서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 우호적인 기자들에게만 질문권을 주었다. 물론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의 전쟁 때에 비하면 개선된 것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1년 걸프전 때 기자들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도 하지 못하고 국방부가 주는 정보만 받아야 했다. 현장에는 접근하지도 못했다. 요즘 전쟁취재 양상이 달라진 것은 군부가 더 개방된 결과다.”

미국언론의 애국주의적 보도와 관련해 그는 “미국 야당인 민주당이 너무 약해진 것도 한 이유”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공화당 정부가 너무 강하다보니 언론이 그 분위기를 알게 모르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 언론은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는다. 전쟁보도와 관련해 로젠 교수는 “전쟁이야말로 워낙 복잡다기한 것이어서 무엇을 보도할지 잘 알기가 쉽지 않으며 또 정말 가치있는 정보를 전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가. 한국에서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언론사 소유구조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최근엔 정부의 취재제한을 둘러싸고 알권리 보장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미국에서도 18세기에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했다. 언론자유가 정착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간섭은 오래가지 못했다. 언론의 역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18세기, 선거에서 패한 정당이 대중에 직접 호소하기 위해 신문을 통해 자신들을 알렸고 그에 맞서 여당에서도 신문을 활용해 대중에 접근했다. 정당제도는 자연스럽게 언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정부가 힘으로 언론을 통제하려고 해도 정치구조의 경쟁성은 자유로운 언론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게 해왔다. 언론과 정부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

―‘언론인의 사명’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에서 언론이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뢰 상실의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주요한 이유는 언론사가 지나친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점이다. 미국 시민들은 거대 언론사를 정부나 산업, 또는 노조처럼 거대기관으로, 이익 추구 집단으로 보게 됐다. 언론인들도 이런 점을 알았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 소유주, 대중 등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강하면 다른 쪽에 충격을 준다. 현재 미국 언론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대중이다. 대중이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이슈마다 논의가 한층 더 잡다해지게 돼 결국 사회적 정치적 비용이 더 소모되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

로젠 교수는 언론 소유주의 상업주의적 경향이 문제가 된 사례로 20년 전의 지방 TV방송사를 들었다. 당시 방송 면허를 만들어낸 것은 정부가 아니라 방송 소유주들이었다는 것. 방송사를 넘길 때 그 면허 값은 1억 달러를 호가했고 면허를 새로 산 사람은 연간 25%의 수익률을 거두기 위해 방송사를 쥐어짰다고 그는 전했다.

―지나친 상업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과거 저널리즘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독자 또는 시청자를 만드는 산업이었다. 지금은 독자나 시청자를 찾아내는 산업이다. 요즘 미국 지방 TV의 경우 자체 취재는 아무것도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달만 하기도 하는데, 저널리즘이 사라진 미디어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다 보면 현재 대학 등에서 시도되는 것처럼 상업적이지 않고 언론매체가 아닌 기관이 뉴스를 생산 전달하는 일도 나올 것이다.”

―21세기의 언론환경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세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미디어 자체가 더 글로벌(global)화 했다. 쌍방향 쪽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 생산비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200달러 미만의 디지털카메라와 200달러 미만의 소프트웨어를 갖고 편집해서 집에 앉아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수 있는 세상이다. 19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때 반세계화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은 방송이나 신문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그것을 보고 CNN 등이 무척 놀랐었다.”

▼인터넷 ‘쌍방향 혁명’ 미미▼

―미래에 경쟁력 있는 미디어는 어떤 것일까.

“각종 미디어 수단들이 수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은 오디오 비디오 사진 그래픽 텍스트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에서 쌍방향 미디어를 해야할텐데, 논의는 무성하지만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CNN이나 뉴욕 타임스가 콘텐츠를 띄워놓은 사이트를 보여주면서 대중에게 ‘필요하면 e메일을 보내라’고 하는 수준이다. 아직은 ‘쌍방향 혁명’은 아니다. 다만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저비용으로 질 좋은 정보를 전파하는 ‘개인 저널리즘’이 생겨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 언론사가 인터넷을 통한 뉴스 제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의 앞날을 어떻게 보는가.

“아무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이익이나 업무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공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방송이 일방적으로 전달했고 시청자는 받기만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읽으면서 쓸 수 있다. 독자 시청자 모두가 제작자인 셈이다.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는 대중(self―informing public)이 이미 생겨나고 있다. 신문 방송은 뉴스 공급자로서의 권위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사나 신문기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과거의 언론사는 ‘우리가 취재해주겠다’면서 기사를 제공했고 40∼50년간 이런 방식이 통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런 매체의 소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언론의 위기다. 앞으로는 기자들이 정보를 아는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 기자가 취재하는 것보다 그에 관해 잘 아는 50명을 네트워크로 만들어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젠 교수는 의사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요즘 의사의 처방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인터넷을 뒤지면 된다. 잘못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세계의 어떤 의사에게나 물어볼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의사가 권위를 잃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신뢰받는다. 이제 의사는 일반인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기자에 대한 요구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곳에 가서 취재해 이야기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로젠 교수는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퍼블릭 저널리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것은 종전의 ‘전문가적 시각에서 내려다보는’ 취재가 아니라 ‘시민의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취재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적 보도태도라는 비판도 있다. 로젠 교수는 “그 나라, 그 사회의 ‘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퍼블릭 저널리즘”이라고 정의한다.

▼사회문제 해결방법 제시를▼

―퍼블릭 저널리즘은 무엇인가.

“퍼블릭 저널리즘은 대중과 괴리되고 있다고 느낀 기자들에 의해 1990년 시작됐다. 문제를 제기하고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보고 그 과정을 보도하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사회의 방관자, 비평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도록 한다. 그래서 ‘시민(Civic) 저널리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자는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의제를 중심으로 시민의 시각에서 보도한다. 지역언론에서 시작돼 언론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퍼블릭 저널리즘은 대도시의 매체에도 적합한가.

“흔히 작은 도시에 맞다고 하지만 필라델피아 덴버 시애틀 보스턴 등 대도시에서도 이런 취재방식을 채용하는 매체가 있다. 미국 내 인구 6위 도시인 필라델피아의 인콰이어러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신문은 시장선거 때 두 후보자가 서로 헐뜯지 말고 도시의 미래에 관해 토론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시민이 쉽게 알 수 있는 용어로, 시민의 시각에서 보도했다.”

“지난해 말 한국의 대통령선거 때 매체들이 경마식 보도를 지양한다고 했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크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선거 때마다 모든 매체가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실험적으로 해보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퍼블릭 저널리즘은 어느 나라, 어떤 사회에서나 가능한가.

“언론인들이 하기 나름이다. 퍼블릭 저널리즘의 방법론은 그 사회가 당면한 문제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 호주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 언론인들이 제각각 상황에 맞는 다양한 버전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미국 것을 빌려가서 써선 안되고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994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시도한 것은 미국식 방법론과 일본의 환경을 감안한 절충형이었다. 퍼블릭 저널리즘은 언론을 더 개방적으로 만들었고 언론인들로 하여금 언론의 역할에 대해 더 인식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konihong@donga.com

▼제이 로젠 교수 약력▼

△미국 뉴욕주 버펄로 출신(46세)

△뉴욕주립대(버펄로) 졸

△뉴욕대 석사 박사(커뮤니케이션 전공)

△1986년부터 뉴욕대 언론매스컴 학과 교수(미디어비평 언론윤리 등 담당)

△1990년부터 ‘퍼블릭 저널리즘’ 주창

△1993∼1997년 나이트재단 지원 ‘공공생활과 언론 프로젝트’ 소장

△1993∼1997년 잡지 ‘티쿤’

편집장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하퍼 스, 네이션, 뉴욕 타임스, 살롱 등에 언론 및 정치 관련 기고

다수

△저서: ‘언론인의 사명’(1999년)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