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시민 거부감 느끼는 위인 동상들

  • 입력 2003년 3월 14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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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공원에 있는 작가 염상섭 동상.
종묘공원에 있는 작가 염상섭 동상.
세종대왕 이황 이순신 정약용 김구 신채호 윤봉길 안중근….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서울의 거리나 공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동상이 많다는 얘기도 된다.

13일 오후 덕수궁. 한 40대 남성이 관광안내원에게 물었다.

“세종대왕이 왜 여기에 있죠? 그 양반이 덕수궁에서 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예기치 않은 질문에 안내원은 “글쎄요”라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덕수궁은 조선의 궁궐이었고 세종은 조선의 왕이었다는 점을 빼면 덕수궁과 세종대왕은 관련이 없다.

여의도공원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왼쪽)과 남산에 있는 백범 김구 동상.

이 동상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졌다. 꼭 관련이 있는 곳에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애초부터 동상은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게다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의 방향도 잘못됐다. 왕은 남향을 하고 앉는 것이 제대로 된 전통.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1998년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역시 동향이다.

최근 창덕궁 앞에 있던 민영환 동상이 위치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 민영환의 생가 터로 이전됐다. 세종로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에 대해서도 “세종로에 세종대왕이 없고 왜 이 충무공 동상이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68년 세워진 이 충무공 동상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졌다. 1970년 전후 박 대통령은 역사적인 인물 10여명의 동상 건립을 지시했다. 그렇게 단기간에 동상을 세우다보니 모양이 천편일률적이다. 그때 남산에 세워진 이황이나 정약용의 동상도 모습이 비슷하다.

그 후에 세워진 동상도 별로 다르지 않다. 윤봉길과 이봉창 의사 등 독립투사의 동상도 그 모습이 그 모습이다.

이들 동상은 대개 약 3m 높이의 받침대 위에 올라가 한 손을 높이 들고 서 있는 모양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동상의 경우 세종대왕이든 다른 인물이든 모두 증명사진 찍듯 표정이 경직돼 있다. 생동감이 떨어진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빈곤한 동상의 모습이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미술평론가 최병식(崔炳植) 경희대 교수의 지적.

“입상(立像)의 경우 높은 받침대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권위적인 느낌입니다. 표정은 모두 굳어 있죠. 그러니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우리에게도 사람 눈높이의 생동감 넘치는 동상이 많아야 하는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앞의 잔다르크 동상은 땅 위에 세워져 있어 보는 사람이 편합니다.”

1996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 세워진 작가 염상섭의 동상은 매력적이다. 벤치에 앉아 먼 데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진 모습이 살아있는 듯하다. 옆에 앉아 말을 건네고 싶다.

서울 강동구도 정절의 백제 여인인 도미 부인의 동상을 천호공원에 세울 계획이다. 살아있는 도미 부인을 만났으면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의 바람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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